국내 유류 유통 시장을 과점해 온 정유 대기업들이 국제 유가 급변기에 44조 원대 매출 규모의 석유류 가격을 담합하고 내부 가격정보를 교환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심판대에 올랐다. 심사관은 이번 행위를 중대한 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의견을 냈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는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의 휘발유·경유·등유 담합 사건과 관련해 심사관의 행위 사실과 위법성 판단, 조치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2026년 10월 7일 위원회에 제출하고 두 회사에 송부했다. 심사보고서 발송에 따라 공정위 전원회의의 행정제재 심의 절차가 공식 개시됐다.

사실관계

공정위 심사관에 따르면 두 회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2월부터 미국-이란 전쟁 직후인 2026년 3월까지 약 4년간 휘발유·경유·등유의 입금가와 확정가, 판매정책 등 판매가격 정보를 상호 교환했다. 이어 2026년 3월 미국-이란 전쟁 이후에는 도매 공급 기준인 판매가격(입금가)을 두 차례에 걸쳐 직접 합의해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사관은 이 같은 담합 행위의 영향을 받은 관련매출액을 총 44조1,000억 원(하루 평균 약 300억 원)으로 추산했다.

국내 휘발유·경유·등유 시장은 SK에너지(28.1%), S-OIL(25.5%), GS칼텍스(23.3%), 현대오일뱅크(21.0%) 등 4개 정유사가 전체의 98%를 점유하는 전형적인 과점 구조다. 2025년 기준 전체 시장 규모만 하루 평균 844억 원, 연간 30조8,000억 원에 이른다.

법적 쟁점과 제재 수위

심사관은 피심인들의 행위가 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0조 제1항 제1호(가격담합)와 제9호(정보교환 담합)를 위반한 중대한 부당공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오행록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심사관은 이러한 행위가 가격 담합과 정보교환 담합에 해당하는 중대한 위반행위라고 판단하고 시정조치 및 과징금 부과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담합 사건 과징금은 중대성 판단에 따라 관련매출액의 최대 10.5%까지 부과될 수 있어, 본회의에서 위법성이 인정되면 조 단위에 이르는 제재금이 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1년 말 도입된 공정거래법상 정보교환 담합 금지 규정이 정유업계의 오랜 유통 관행에 어떻게 적용될지가 본회의 심의와 향후 행정소송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반론과 향후 절차

두 회사는 심의 과정에서 혐의를 적극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교환된 정보는 시장에 공개된 정보이며 회사 방침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SK에너지 측 역시 사실관계와 입장을 충실히 소명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7월 현대오일뱅크 법인과 임직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반면 SK에너지는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적용받아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 바 있어 행정제재 감면 비율 역시 변수로 꼽힌다.

피심인들은 심사보고서 수령일로부터 8주 동안 서면 의견서를 제출하고 증거자료를 열람·복사하며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정위는 방어권 보장 절차가 끝나는 대로 전원회의를 소집해 법 위반 여부와 구체적인 과징금 액수를 최종 의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