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정보를 이용할 목적 없이 공무원을 괴롭히기 위해 타인의 정보공개 결정문 일체를 요구하는 행위는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알권리라는 외형을 갖췄더라도 제도의 본래 취지를 벗어나 행정력을 부당하게 낭비시키는 반복 청구에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취지다.

부산지방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허준서 부장판사)는 교도소 수감자 A 씨가 부산진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2026년 10월 1일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사실관계

A 씨는 2026년 2월 부산진경찰서에 "2025년 11월 한 달간 모든 국민이 부산진경찰서에 정보공개를 신청해 내려진 결정문 전체"를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대상 문건은 모두 108건에 달했다.

부산진경찰서는 2026년 3월 해당 정보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요구받은 결정문 108건 가운데 103건은 수사 관련 자료이고, 나머지 5건도 제3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6호를 처분 근거로 제시했다. A 씨는 비공개 결정이 위법하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 판단

재판부는 A 씨의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고 보았다. 정보를 실제로 취득해 활용하려는 의사 없이 오로지 담당 공무원을 괴롭히려는 의도로 제도를 악용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A 씨가 요구한 정보가 원고 본인의 법률상 지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제3자의 민감한 사생활 정보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방대한 분량의 자료에서 개인정보를 일일이 식별해 가려내고 삭제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경찰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점도 기각 사유로 들었다.

판결 의의

A 씨는 최근 3년간 전국 경찰관서를 상대로 이번 사건과 유사하게 총 61건의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비공개 처분에 불복해 소송 6건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경찰관서를 상대로 교도소 수감자가 제기한 유사 소송은 34건이다. 경찰은 이 중 23건에서 승소했고 4건에서 패소했으며, 나머지 7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앞서 정보공개 제도를 이용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 하거나 오로지 담당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으로 청구하는 등 권리남용이 명백한 때에는 정보공개청구권 행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확립한 바 있다(2014두9349). 이번 판결 역시 이 같은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해 악의적 대량 청구에 대응할 기준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악성 정보공개 청구를 정보공개심의회 심의를 거쳐 조기 종결 처리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 노동계는 현장 업무 마비를 막기 위해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부당한 요구라는 기준이 모호해 시민과 언론의 정당한 권력 감시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