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을 융통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넘겼다가 대출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경찰 피의자 조사를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출 사기를 당한 피해자임에도 타인에게 통신 회선을 넘긴 행위 자체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에 해당해 형사처벌 대상에 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내구제 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은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취약계층이 온라인 광고를 접하고 본인 명의로 단말기나 가입자식별모듈(USIM)을 개통해 넘긴 뒤 일정 현금을 받는 수법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내구제 대출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과 사기죄가 복합된 불법사금융 범죄다. 넘겨진 회선이 보이스피싱 등 범행에 악용되면 대포폰 제공 혐의뿐 아니라 사기방조 혐의까지 함께 적용받을 수 있다.
대출금 못 받았어도 범죄 성립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는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제97조 제7호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자금을 융통해 주는 조건으로 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된 이동통신단말장치의 역무를 이용하거나 이를 권유·알선하는 행위 역시 제32조의4 제1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다.
대법원은 자금 융통 조건으로 타인 명의로 개통된 단말장치를 넘겨받아 이용한 경우(2018도2475)뿐 아니라 유심만 넘겨받아 이용한 사건(2019도15087)에서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유죄를 확정했다. 대출금을 실제로 받지 못했더라도 상대방이 사용하도록 넘긴 사실과 고의가 인정되면 범죄가 성립한다. 사후에 회선을 해지했거나 피해 발생 금액이 150만 원 이하로 비교적 적다는 사정만으로 처벌 자체가 면제되지는 않는다.
신속한 회선 해지와 엠세이퍼 차단 필수
이미 명의를 넘겨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면 신속한 사후 조치 증빙을 확보하는 것이 양형상 핵심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32조의6에 규정된 명의도용방지서비스인 '엠세이퍼(M-Safer)'로 본인 명의의 추가 이동전화 가입제한을 신청하고, 이미 개통된 회선은 즉시 해지해야 피해 확산을 막으려 노력했다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피의자 조사 단계에서는 대출 상담 메시지, 개통 계약서와 해지 확인서, 엠세이퍼 가입제한 내역, 대출금을 받지 못한 금융거래 내역을 수사관에게 의견서 형태로 제출해야 한다. 대출 사기에 속아 넘어간 정황과 범죄 이용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는 점을 입증하고 피해 예방 조치 자료를 갖춘 초범이라면 기소유예나 벌금형 감경을 주장해 볼 여지가 있다.
광주청드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내구제 대출 사기 상담자 중 경찰 신고 비율은 6%에 불과했다. 피해자 본인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탓에 신고를 피하는 사이 추가 피해가 누적되는 셈이다. 휴대폰 개통을 조건으로 한 대출 권유에는 절대 응하지 말아야 하며, 이미 연루됐다면 즉시 해지·차단한 뒤 수사에 대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