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모르는 사람에게서 수십만 원이 입금된 뒤 갑자기 모든 은행 계좌의 비대면 금융거래가 마비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사기범이 무고한 제3자 계좌에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보낸 뒤 사기이용계좌로 허위 신고해 금융거래를 전면 차단하는 이른바 '통장 묶기(통장협박)' 수법이다. 영문도 모른 채 전자금융거래 제한대상자로 지정됐다면 당황하지 말고 정해진 법적 구제 절차를 신속히 밟아야 한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4조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금융회사가 지체 없이 해당 계좌 전부에 지급정지 조치를 내리도록 규정한다. 금융감독원은 같은 법 제13조의2에 따라 해당 계좌 명의인을 전자금융거래제한대상자로 지정한다. 이에 따라 인터넷·모바일 뱅킹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포함한 모든 비대면 거래가 즉각 차단된다. 종전에는 사기범과 무관한 제3자라도 수사기관의 불송치 결정이나 민사소송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수개월간 금융거래가 묶이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었다.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개정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법률 제20329호)이 2024년 8월 28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개정 법령 제7조 제1항 제3호는 계좌가 피해금 편취에 이용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 자료로 소명하면 명의인이 은행에 이의제기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금융감독원은 2026년 5월부터 소명자료를 갖춘 이의제기 신청에 5영업일 이내로 심사 결과를 통보하도록 은행권 처리 절차를 표준화했다. 소명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범죄 의심 금액을 뺀 나머지 정상 잔액과 다른 금융계좌의 지급정지가 즉시 풀린다.
통장 묶기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점은 입금된 돈을 절대 임의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돈을 출금하거나 송금인이 요구하는 제3의 계좌로 재송금하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자금 세탁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살 수 있다. 형법상 불법영득의사가 없음을 입증하려면 입금 사실을 인지한 즉시 금융회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상 입금 사실을 알리고 반환 의사를 남겨야 한다. 이때 고객센터와의 통화 녹취나 일시가 담긴 통화기록은 혐의를 벗는 핵심 증거가 된다.
이후 곧바로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 진정서를 접수하고 통장 묶기 피해 사실을 진술한 뒤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발급받아야 한다. 경찰 접수를 마친 뒤에는 은행 고객센터나 영업점에 이의제기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때 사건사고사실확인원과 거래내역서, 은행에 반환 의사를 밝힌 통화기록, 상대방과 별도 거래나 연락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함께 서면으로 내야 한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계좌를 타인에게 빌려주거나 비밀번호·일회용 비밀번호(OTP)를 전달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을 일관되게 진술해야 한다. 불법영득의사가 없었으며 조직적 공모 관계가 없음을 법리적으로 밝힌 의견서를 제출해 경찰 단계에서 불송치 결정을 이끌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지급정지 해제를 대가로 합의금을 뜯어내려는 통장 묶기 가해자에게는 형법 제350조의 공갈죄가 성립하며, 부정한 목적으로 거짓 지급정지를 신청한 자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6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