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려줬더라도 이후 채무자와 변제 기일을 정해 차용증을 다시 썼다면 법적으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당초 대여행위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더라도 사후에 맺은 별도 반환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민법 제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민법 제103조 역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를 무효로 본다. 이에 따라 법원은 도박에 쓰일 돈임을 알면서 빌려준 자금은 채권자가 반환을 청구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무자가 도박 빚이라는 사정을 악용해 “어차피 불법원인급여라 법적으로 갚지 않아도 된다”며 변제를 거부하는 분쟁이 잦았던 이유다.

사후에 새로 작성한 차용증이 있다면 법률관계는 달라진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도박자금 5,000만 원을 대여한 뒤 수개월 지나 변제기일을 정한 차용증을 새로 쓰고 보증까지 세운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2024다272910). 재판부는 “불법원인급여 후 급부를 이행받은 자가 급부의 원인행위와 별도의 약정으로 급부 자체 또는 그에 갈음한 대가물을 반환하기로 하는 것은 그 반환약정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입증 책임의 무게중심도 채무자에게 넘어간다. 대법원은 반환약정이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는 점은 수익자인 채무자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채무자가 단순히 “원래 도박자금이었다”고 항변하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차용증 작성 행위 자체가 강박이나 별도의 불법 경로로 이뤄졌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변제 책임을 져야 한다.

불법원인급여 반환을 부정해 채무자에게 급여를 종국적으로 보유하게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반환청구가 허용된다는 법리도 재확인됐다(2024다292464). 최초 대여 당시 목적이 도박 조장이 아니었거나 상대방의 채무 면탈 의도가 현저하다면 반환 청구가 인용될 여지는 더 넓어진다.

실무상 대여금을 돌려받으려면 객관적 증거 확보가 최우선이다. 최초 계좌이체 내역과 사후에 작성한 차용증 원본은 물론, 변제 기한 유예를 요청하거나 갚겠다고 약속한 메신저 대화나 통화 녹취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입증 자료를 바탕으로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민사 소액사건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형사처벌 위험은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형법 제246조에 따르면 도박을 한 사람은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상습 도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민사 소송 과정에서 실제 도박 사실이 드러나면 수사기관의 조사로 이어질 수 있어 법적 조치 전 사실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