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한도를 늘려준다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를 보냈다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A 씨는 최근 법원에서 날아온 소장을 열어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의 계좌로 흘러 들어온 사기 피해금은 400만 원인데, 소송물가액(소가)에는 5,000만 원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피고란에는 자신을 포함해 28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검거가 어려워지자 피해자들이 피해금을 돌려받으려고 중간 경로로 쓰인 계좌 명의인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러 명의 계좌를 거친 피해금을 한 번에 환수하고자 피고 수십 명을 한데 묶어 소송을 제기하는 탓에, 개별 명의인이 거액의 소가를 보고 당황하는 일이 잦다.
소장에 적힌 소가가 곧 개인이 물어내야 할 금액을 뜻하지는 않는다. 민사소송 등 인지규칙에 따르면 여러 피고를 상대로 한 별개 청구가 병합된 경우 청구 가액을 합산해 소가를 산정하거나, 연대 책임을 구하는 다액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피고는 소장 첫 장의 '청구취지'를 살펴 자신에게 청구된 금액이 실제 입금액 400만 원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전체 피해액을 다른 피고들과 '공동하여 지급하라'는 부진정연대책임 청구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금액 차이와 상관없이 소장을 받았다면 지체 없이 대응해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257조에 따라 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법원은 청구 원인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보고 변론 없이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실제 서울북부지방법원은 투자 사기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2024가단138840)에서 30일 내 답변서를 내지 않은 피고 C 씨에게 자백간주를 적용해 피해금 전액인 5,239만 1,50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범죄 가담 사실이 없음을 적극적으로 소명한 다른 피고에게는 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침묵하는 순간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포통장 명의인이라고 해서 법원이 무조건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은 타인의 불법행위에 과실 방조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통장을 넘길 당시 구체적으로 불법행위에 쓰일 것을 예견할 수 있었어야 하고, 계좌 양도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고 판단한다(2012다84707). 입금 즉시 조직원이 돈을 전액 인출해 통장에 잔액이 남지 않았다면 민법상 부당이득반환 책임도 성립하지 않는다(2007다51239).
피고는 답변서에 통장을 넘겨주게 된 구체적인 사기 피해 경위와 메신저 대화 내역을 적시해야 한다. 아울러 즉시 전액 인출된 거래내역서, 수사기관의 불송치 결정서나 불기소 이유통지서를 증거로 첨부해 고의나 과실이 없었음을 소명해야 한다. 법원에서 과실이 일부 인정되더라도 의심 없이 돈을 보낸 피해자 측 과실이 참작되면 배상액이 30%에서 70% 선으로 크게 감액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