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에서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 주문을 냈더라도 실제 매매가 체결되지 않았다면 무차입 공매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2021년 형사처벌 조항 도입 뒤 법원에 넘겨진 불법 공매도 1호 형사사건에서 매매체결을 범죄 성립의 필수 요건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0월 8일 구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콩상하이은행(HSBC) 법인의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2025도17317). 대법원은 사립학교 교원의 정치 활동 제한과 성폭력 무고죄 입증 기준 등을 다룬 주요 판결도 같은 날 선고하고 10월 12일 판례속보로 공개했다.
불법 공매도 형사처벌 1호 사건…'체결' 기준 확립
HSBC는 2021년 사전에 차입하지 않은 국내 상장주식 158억 원 상당의 공매도 주문을 제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금융감독원이 글로벌 투자은행을 전수조사해 2023년 12월 고발한 사건으로, 2021년 4월 무차입 공매도 형사처벌 규정(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부당이득액의 3~5배 벌금)이 신설된 뒤 법원에 기소된 첫 사례였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구 자본시장법 제180조 제1항 각 호가 금지하는 '매도'의 의미에 단순 매도호가 제출 단계까지 포함되는지였다. 법 조항에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호가 접수만으로 기수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갈렸다.
대법원은 "구 자본시장법 제180조 제1항 각 호에서 말하는 매도란 상장증권에 대한 매도호가와 매수호가가 합치되어 매매체결이 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체결이 이뤄지지 않은 단순 주문 입력만으로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로 향후 무차입 공매도의 형사 책임은 체결 여부와 고의 입증에 따라 갈리게 됐다.
휴직 사립교원 국회 보좌관 임명 제동
사립학교 교원이 고용휴직을 내고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는 행위에는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 제3부는 전경원 전 하나고등학교 교사가 국회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임명취소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3두37193).
전 씨는 2020년 6월 학교에 고용휴직을 낸 뒤 국회의원 4급 보좌관에 임명됐으나, 국회사무처는 사립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겸직 금지를 이유로 같은 해 10월 임명을 취소했다. 2심은 휴직 상태라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며 임명취소를 위법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휴직한 사립학교 교원을 국회의원 보좌관에 임명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성폭행 불송치 후 무고 기소…"엄격 증명 필요"
성범죄 신고 뒤 수사기관에서 불송치나 불기소 결정이 났더라도 섣불리 고소인을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도 재확인됐다. 대법원 제2부는 전 연인을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가 불송치 결정 후 무고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2026도1865).
대법원은 "무고죄는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적극적 증명이 필요하고, 정황의 과장에 불과한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성폭행 피해자의 변소를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기준으로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3부는 저당권부 채권 일부를 대위변제한 자의 저당권 일부 이전 부기등기 청구권은 소멸시효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2026다204200). 대법원 제2부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기초자산 역외펀드의 감사의견 한정의견 사실을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면 투자자보호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2024다3029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