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가족이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상속 순서와 처리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린 손자녀까지 빚을 떠안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종전에는 자녀들이 빚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상속을 포기했다가 손자녀에게 채무가 고스란히 넘어가는 일이 빈번했으나, 대법원 판례 변경과 민법 개정으로 구제 경로와 실무 절차가 정비됐다.

민법 제1000조에 따른 상속 순위는 1순위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자녀·손자녀), 2순위 직계존속(부모·조부모), 3순위 형제자매, 4순위 4촌 이내 방계혈족이다. 민법 제1003조에 따라 배우자는 1순위나 2순위 상속인이 있는 경우 같은 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해당 상속인이 모두 없으면 단독상속인이 된다. 법정상속분은 같은 순위 상속인끼리 균분하되 배우자는 5할을 가산해 1.5배를 받는다(민법 제1009조).

과거에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원이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포기의 소급효로 손자녀나 직계존속이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 됐다(대법원 2013다48852 판결). 그 결과 빚을 막으려던 조치가 어린 손자녀를 빚더미에 앉히거나, 손자녀까지 법원에 상속포기를 따로 신청해야 하는 연쇄 분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으로 정리됐다. 대법원은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원이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나 직계존속이 아닌 남은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판례를 바꿨다(2020그42 결정). 상속을 포기한 자녀들은 채무가 자신과 자녀에게 승계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던 의도였으므로, 손자녀가 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의 기대와 법감정에 반한다는 취지다.

실무상 빚 대물림을 가장 깔끔하게 차단하는 방법은 '배우자 1인의 한정승인'과 '1순위 자녀 전원의 상속포기' 조합이다. 배우자가 상속재산 한도 안에서만 채무를 갚는 한정승인을 신청하고 자녀들이 포기하면, 상속채무는 배우자 선에서 종결되며 손자녀나 직계존속 등 후순위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만 배우자까지 포함한 가족 전원이 상속을 포기하면 차순위인 형제자매나 4촌 이내 방계혈족으로 채무가 넘어가므로 배우자가 반드시 한정승인을 마쳐야 한다.

상속 승인과 포기는 원칙적으로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민법 제1019조 제1항). 부모나 법정대리인의 부주의로 기간을 놓친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됐다. 2022년 12월 시행된 개정 민법 제1019조 제4항에 따라 미성년 상속인은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스스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