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가출하거나 분가한 뒤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활비와 양육비를 일방적으로 끊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홀로 어린 자녀를 돌보며 시간제 근로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양육자는 갑작스러운 경제적 단절로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이혼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라도 가정법원에서 생활비와 양육비를 강제할 절차가 마련돼 있다고 조언한다.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와 공동생활비 분담 의무는 법률상 혼인이 유지되는 한 그대로 존속하기 때문이다.
이혼 합의 없어도 부양료·양육비 청구 가능
민법 제826조 제1항은 부부가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민법 제833조 역시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다.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분가하거나 가출해 생활비를 주지 않는 행위는 법적 부양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혼인 관계가 유지되는 한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는 혼인생활 비용에 포함되므로, 별거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일방은 상대방에게 혼인비용 분담 청구의 일종으로 부양료 및 양육비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2014스26 결정). 춘천지방법원 역시 이혼 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별거 중인 배우자에게 민법상 부양·협조 의무에 따라 부양료 분담을 청구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2021느단3220 심판).
이에 따라 피해 배우자는 이혼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가정법원에 가사비송 사건으로 '부양료 및 양육비 청구 심판'을 낼 수 있다. 과거에 밀린 생활비는 물론이고, 자녀가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매달 지급해야 할 금액을 정해 달라고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개월 걸리는 심판… '사전처분'으로 공백 차단
부양료 청구 심판은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수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 당장 생계와 육아 비용이 급하다면 심판 청구와 동시에 가사소송법 제62조 제1항에 따른 '사전처분'을 함께 신청해야 한다.
사전처분은 법원이 사건의 종국 결정 전까지 임시로 매월 일정 금액의 생활비나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도록 명하는 제도다. 사전처분 결정은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력은 없지만, 상대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위반하면 가사소송법 제67조 제1항에 따라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제재를 받는다.
이후 부양료 청구 심판이 확정되면 집행권원이 성립한다. 배우자의 급여나 예금 통장 압류 등 강제집행과 법원 이행명령 신청을 거쳐 밀린 돈을 받아낼 수 있다.
단순 미지급은 유기죄 성립 어려워… 증거 확보 선행돼야
생활비 중단을 '경제적 학대'로 보고 형법상 유기죄(제271조) 등으로 고소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으나 실무상 처벌 요건은 엄격하다. 형법상 유기죄가 인정되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위험이 발생했거나 보호의무를 완전히 방기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단순한 연락 두절이나 생활비 미지급만으로는 형사처벌을 단정하기 어렵다.
임효승 법무법인 홍림 총괄대표변호사는 “생활비 미지급과 연락 단절만으로 형법상 유기죄 등 형사처벌이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이혼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민법 제833조에 근거해 가정법원에 부양료 및 양육비 심판을 청구하고, 결정 전까지 사전처분을 신청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가정법원 절차를 밟으려면 과거 생활비 지급 약속이 담긴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대화, 기존 계좌 입금 내역, 생활비 요구에 답하지 않은 내역, 실제 자녀 양육 지출 영수증 등 객관적 증거를 미리 확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