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직접 살겠다며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해 내보낸 뒤 2년 안에 다른 세입자를 들였다면,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음을 직접 증명하지 못하는 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다른 부동산의 보증금을 돌려주느라 자금난에 빠져 재임대했다는 사정은 면책 요건인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제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임차인 A 씨가 임대인 B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2026년 9월 10일 확정했다(2026다203203).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B 씨가 A 씨에게 손해배상금 3,079만 9,992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사실관계
A 씨는 2020년 9월 12일부터 2022년 9월 12일까지 2년 동안 보증금 6억 6,000만 원에 B 씨 소유의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를 임차했다. 임대차기간 만료를 약 4개월 앞둔 2022년 5월 B 씨는 직접 거주하겠다며 주택 인도를 요구했다. A 씨는 계약갱신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해 계약 종료 뒤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B 씨는 2022년 9월 전입신고를 마치고 해외에 체류하다 2023년 2월 입국해 거주했다. 그러나 종전 계약이 갱신되었더라면 보장받았을 기간인 2024년 9월 12일이 끝나기 전인 2024년 2월, 제3자에게 기존보다 1억 6,000만 원 올린 보증금 8억 2,000만 원을 받고 새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약 1년 2개월만 거주하고 다른 아파트로 이사한 셈이다. 이에 A 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임대해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원심 판단
1심은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B 씨가 공동 소유한 다른 다가구주택 6개 호실 임차인들이 동시에 총 6억 9,000만 원의 보증금 반환을 요구해 자금 사정이 나빠졌고, B 씨가 실제로 1년 이상 거주했다는 점을 들어 제3자 임대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봤다.
항소심은 판단을 뒤집어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다른 부동산의 보증금 반환채무는 갱신거절 당시에 이미 발생해 만료 시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단순한 자금 사정 악화만으로 아파트 재임대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없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은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임대인이 갱신되었을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주택을 임대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의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임대인이 갱신거절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인하여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하였어야 하고,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하는 것이 불가피하였어야 한다"며 "위와 같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판시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집주인이 2년 내에 제3자에게 다시 임대했을 때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성립 요건과 증명책임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첫 대법원 판례다. 종전 대법원은 갱신거절 시점의 실거주 의사 확인 기준을 밝혔으나, 중도 재임대 시 면책 기준을 확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거주 명목으로 기존 세입자를 퇴거시킨 임대인은 2년이 지나기 전 개인적 자금 경색이나 대출 제약 등을 이유로 제3자에게 재임대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졌다. 반면 임차인은 집주인의 조기 재임대 정황을 확인하면 정당한 사유의 부존재를 직접 증명하지 않고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