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만기일에 맞춰 새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매수한 임차인이 집주인의 보증금 반환 지연 탓에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존 전세대출 상환이 막혀 신규 주택담보대출이 무산되고 매매계약이 파기되더라도, 법적 요건을 미리 갖추지 못하면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전액 청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매매계약 파기는 ‘특별손해’…예견가능성 입증해야

임대차계약 종료에 따른 보증금 미반환으로 신규 매매계약이나 분양계약이 해제돼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몰취당한 손해는 민법상 ‘통상손해’가 아닌 ‘특별손해’로 분류된다.

민법 제393조 제1항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통상의 손해로 한정한다. 같은 조 제2항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임차인의 새 부동산 매매계약이 해제된다는 구체적 사정을 사전에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뜻이다.

제로변호사 법률사무소 홍윤석 변호사는 “매매계약 파기로 발생한 계약금 몰취 손실은 민법 제393조 제2항의 특별손해에 해당한다”며 “임대인이 보증금 미반환이 매매계약 파기를 초래한다는 사정을 인지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잔금 미납으로 인한 손실 발생 사실과 손해배상 청구 의사를 내용증명으로 즉시 통지해 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례와 사전 증거 확보의 중요성

임대인이 관행을 이유로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내어줄 수 있다”며 반환을 거부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93다7204 판결 등)에 따르면,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임차인이 주택 명도 등 반대의무를 먼저 이행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이행지체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실무상 몰취된 계약금 상당액을 배상받으려면 인과관계와 임대인의 인지 여부를 서면으로 증명해야 한다. 법률사무소 정금 대표변호사인 박순배 변호사는 “보증금 미반환으로 계약금을 몰취당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기존 임대차계약서와 새로 매수한 주택의 계약서, 계약금 몰취 통지서, 대출 실행 불가 증빙 등을 철저히 구비해야 한다”고 짚었다.

묵시적 갱신 분쟁 차단과 임차권등기명령

만기 전 구두로 계약 연장 가능성을 거론했더라도, 만기 2개월 전 명확히 퇴거 의사를 전달하고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 모집에 착수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에 따른 묵시적 갱신 주장은 방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보증금 미반환 징후가 보이면 즉시 임대인에게 신규 매매 잔금일과 계약금 몰취 위험을 적시한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문자메시지와 통화 녹취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기 이후에도 반환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에 따른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