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 대출을 미끼로 계좌 거래실적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자금세탁 심부름을 한 금융이용자들이 형사재판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출을 받으려다 이용당했을 뿐 범죄인 줄 몰랐고 단 1원도 챙기지 못했다고 호소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은 비정상적인 거래 방식을 용인한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하는 추세다.
최근 아들 수술비 대출을 알아보던 A 씨는 대출업자로부터 "통장 거래실적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A 씨의 계좌로 세 차례에 걸쳐 입금된 금액은 5,000만 원, 3,000만 원, 2,000만 원 등 총 1억 원에 달했다. A 씨는 지시에 따라 이 돈으로 금을 매입한 뒤 상품권을 다시 샀고, 이를 코인업자에게 넘겼다. 그러나 직후 A 씨의 계좌는 전기통신금융사기 이용계좌로 지정돼 지급정지됐고, 상대방은 연락을 끊었다.
수사기관 3곳의 조사를 거친 A 씨는 검찰로부터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방조 및 형법상 사기방조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겨졌다(구공판). 과거 보이스피싱 피해로 5년간 개인회생을 거쳤던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 사실과 무지를 거듭 호소했으나, 검찰은 비정상적 거래 과정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용인했다며 '미필적 고의'를 적용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은행의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과 경찰의 현금 인출 감시망을 피하려 대출 희망자를 자금세탁 창구로 악용하고 있다. 신용도가 낮아 제도권 금융 대출이 어려운 금융취약계층에 접근해 입출금 실적을 인위적으로 쌓아야 저금리 대출이 승인된다고 속인 뒤, '피해금 입금 → 금·상품권 매입 → 가상자산 전환'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세탁 현장에 직접 투입하는 방식이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히 사기범에게 속았다는 주장만으로는 형사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신태길 변호사는 지식iN 법률상담에서 "총 1억 원에 달하는 큰 금액을 계좌로 받아 금, 상품권, 가상자산으로 전환해 전달한 행위는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보이스피싱 범행의 핵심적인 자금세탁 단계로 평가한다"며 "검찰은 비정상적인 거래 방식을 알면서도 용인했다는 미필적 고의를 적용한 상태이므로 당시 대화 내역 전체를 분석해 방조의 고의를 철저히 다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법 제32조에 따라 사기방조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정범보다 감경되더라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대법원(2003도6056)은 방조범의 고의를 판단할 때 정범이 실행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할 것까지 요구하지는 않으며, 미필적 인식이나 예견으로도 충분하다고 판시해 왔다. 수원지방법원 역시 2026년 10월 7일 대출을 위해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인출해 전달한 피고인에게 "대출이라는 무형의 이익에 치중해 통상적인 의심을 외면했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2026고단558).
사기방조 혐의로 입건되면 형사 처벌 외에도 금융거래가 전면 묶이는 큰 불이익이 따른다. 보이스피싱 사기이용계좌 명의인으로 등록되면 전자금융거래 제한 조치가 내려져 전 금융기관의 비대면 계좌 개설, 인터넷뱅킹, 신규 대출 등이 최장 수년간 정지된다. 피해자들로부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위험도 떠안는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가 대출 실행 과정에서 사전 입출금 실적을 요구하거나 계좌로 보낸 돈을 금·상품권·가상자산으로 바꿔 전달하라고 지시하는 경우는 100% 자금세탁 범죄라고 강조한다. 이미 연루돼 수사나 재판을 앞두고 있다면 대출업자와 나눈 문자메시지, 통화 녹음, 실제 금전적 이익을 취득하지 않은 명세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해 범행 인식이 없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