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해외 각지에 거점을 두고 국내 피해자를 노려온 기업형 스캠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전 세계 경찰이 상설 공조 체계를 가동한다. 대한민국 경찰청이 실무를 총괄하는 상설 사무국을 맡고 다국적 합동 검거 작전을 정례화한다.

경찰청 본청 국제치안협력관 국제공조1과는 2026년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국제공조협의체(IICA) 제1차 총회를 열었다. 경찰청은 이번 총회에서 초국가 스캠 범죄 공동 대응 기본 원칙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10월 23일 발표했다. 총회에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 5개 대륙 26개국과 6개 국제기구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상설 사무국 서울 설치와 정례 작전

총회 마지막 날 채택된 결의안은 국경을 넘나드는 스캠 범죄에 맞서 각국 경찰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을 처음으로 문서화했다. 협의체 참여국은 의장국을 순환 수임하기로 합의했다. 실무를 총괄·담당하는 상설 사무국은 대한민국 경찰청에 설치된다.

각국 경찰은 스캠과 인신매매 범죄를 겨눈 국제 공동작전 '브레이킹 체인스(Breaking Chains)'를 정례 운영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번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문이다. 각국의 내부 행정 절차와 승인 일정을 고려해 참여 방식을 공동 서명, 지지 의사 표명, 옵저버 참여로 나눴다.

한국과 미국, 독일, 싱가포르, 호주, 필리핀 등 15개국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아프리카경찰협력기구(아프리폴) 등 2개 기구는 결의안에 공동 서명했다. 프랑스, 일본, 캄보디아, 태국 등 10개국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아세아나폴 등 2개 기구는 지지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중국과 키르기스스탄, 국제이주기구(IOM) 등 4곳은 옵저버로 참여했다.

느린 사법공조 한계 넘는다

전통적인 형사사법공조나 범죄인 인도 절차는 법무부와 외교부를 거치는 조약 절차상 수개월 이상 걸린다. 이 때문에 거점을 기민하게 옮기는 해외 사기 조직을 단속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캄보디아 등 동남아를 거점으로 한 투자 리딩방 사기나 로맨스스캠이 취업 사기·감금 등 강력 범죄와 결합하자 기동력 있는 경찰 간 직접 공조 필요성이 커졌다.

경찰청은 2025년 10월 9개국 및 인터폴과 함께 IICA를 출범시켰다. 협의체 참여국은 1년 만에 52개국으로 늘었다. 앞서 진행된 세 차례 합동작전 회의에서는 사건 116건과 추적 단서 227건이 공유됐다. 한국 경찰은 이를 토대로 2026년 9월까지 피의자 132명을 검거하고 73명을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

정부 차원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12월 29일 경찰청·외교부·법무부·국가정보원 등 10개 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초국가범죄 특별대응TF가 출범했다. 범정부 대응 결과 2026년 1월부터 9월까지 동남아 지역 범죄자 검거는 전년 동기 대비 340명에서 834명으로 늘었고 국내 송환 인원은 254명에서 655명으로 증가했다. 2026년 1월 23일에는 캄보디아에서 120억 원대 로맨스스캠 조직원 등 피의자 73명을 전세기로 일괄 송환하기도 했다.

법적 근거 정비와 남은 과제

국제 공조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도 갖춰졌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8조의2와 제8조의4, 국제형사사법 공조법 제38조가 외국 경찰기관과의 정보 교류 근거를 제공한다. 2026년 7월 7일 시행된 '범죄대응·수사 등 국제공조 등을 위한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에 관한 규정' 제4조는 국외 도피 피의자의 추적·검거와 증거 수집을 위해 경찰청장이 개인정보를 국외로 이전할 수 있는 기준을 구체화했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1년 전 9개국으로 시작한 협의체가 이제 5개 대륙을 잇는 공조망이 됐다"며 "우리 국민을 노리는 범죄조직이 세계 어디에 있든 각국 경찰과 함께 끝까지 추적·검거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청사 안에 전담 인력을 배치해 IICA 상설 사무국을 조속히 구축하고 참여국 간 차기 순환 의장국 선정을 논의할 방침이다. 다국적 수사 과정에서 수집한 국외 디지털 증거가 적법절차를 준수했는지와 형사재판상 증거능력을 갖췄는지는 향후 법정에서 다뤄질 주요 실무 쟁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