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국가 기관에 특정 기업의 민원을 챙겨봐 달라고 연락한 행위가 정당한 의정활동인지, 법률상 부정청탁인지 가리는 사법적 판단이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이 제약업체 임상시험 승인 과정에서 국회의원을 거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관계를 유죄 판단 근거로 명시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2026년 9월 30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과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제넨셀 창업주 강 모 씨에게 징역 4년과 벌금 4,000만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강 씨가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을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취급하는 임상시험에 관해 청탁한 사실을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채택했다.

논란의 발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넨셀은 2021년 9월 23일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ES16001)의 임상 2·3상 시험계획(IND) 승인을 식약처에 신청했다. 식약처가 14개 항목의 보완을 요구하자 김 의원은 10월 12일 김강립 당시 식약처장에게 직접 연락해 실무자들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이후 신청 접수 33일 만인 10월 26일 식약처는 최종 승인을 내렸다. 통상 임상시험계획 법정 처리 기간이 약 71일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속도였다.

문제는 안전성 검증 자료였다. 해당 약물은 2022년 국내 환자 93명에게 투약됐다. 하지만 이후 재판 과정에서 동물실험 단계의 햄스터와 실험쥐 폐사, 토혈, 폐 비대증 발생 사실이 보고서에서 은폐·조작된 정황이 드러났다. 약사법 제34조와 제34조의4는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임상 승인을 받거나 기록을 조작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김 의원 측은 부정한 청탁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의원은 "국내 중소기업의 임상시험 절차가 부당하게 지연되지 않도록 살펴봐 달라는 공익적 고충 민원의 단순 전달이었다"며 허가 기준 완화나 절차 생략을 요구한 사실이 없고 금품을 수수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서울서부지검이 2024년 12월 제3자뇌물제공 약속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에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자, 김 의원은 처분에 불복해 2025년 2월 헌법재판소에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당시 주무 부처였던 식약처 역시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2026년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코로나19 신속심사 프로그램에 따라 과학적 기준에 맞춰 심사했을 뿐이며 식약처 직원들은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독성 실험 결과가 조작된 약물이 환자들에게 투약됐다며 원본 자료 제출과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법적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식약처 임상 승인 청탁 대가로 김 의원에게 후원금 500만 원을 주기로 약속한 혐의로 기소된 브로커 양 모 씨와 창업주 강 씨의 결심공판을 2026년 11월 12일 열고 연말께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서울 영등포경찰서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알선수뢰 혐의 등으로 김 의원과 전직 식약처장에 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 권한과 형법상 직권남용·알선수뢰의 법적 경계선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