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바다 밑 탄광에 갇혀 숨진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해가 84년 만에 수습됐으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민간이 짊어져 온 유해 수습 책임을 이제 국가가 법과 예산으로 넘겨받아야 한다는 법조계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위원장 이상희)는 2026년 10월 23일 성명을 내고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장생)탄광 희생자 유해 수습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발굴과 국회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장생탄광 참사는 1942년 2월 3일 오전 6시 해저 갱도가 무너져 발생했다. 당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136명과 일본인 노동자 47명 등 183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희생자의 약 75%가 조선인이어서 당시에도 조선탄광으로 불렸다. 사고 직후 구호보다 탄광 폐쇄가 우선되면서 희생자 유해는 80년 넘게 해저에 방치됐다.

위원회가 공식 성명을 낸 배경에는 최근 한·일 양국 정부의 첫 유해 신원 확인 시도가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 있다. 한·일 양국 정부는 2026년 10월 23일 민간 잠수 조사로 수습된 유해 5점의 공동 유전자(DNA) 감정 결과, 남성 2명의 유골로 확인됐으나 기존에 확보한 양국 유족의 DNA와 일치하지 않아 신원을 특정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유해를 찾고도 가족을 찾지 못하는 원인으로 정부의 소극적인 행정을 지목했다. 위원회는 "136명의 조선인 희생자 중 37명의 유족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된 유족 가운데서도 23명은 DNA 감정조차 완료되지 않았다"며 "시료 감정이라는 행정적 절차만 반복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제기구 판단과 헌법적 가치도 짚었다. 위원회는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CEACR)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조선인 등에 대한 전시 강제동원이 제29호 협약을 위반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협약 위반의 책임은 유감 표명만으로 소멸하지 않고, 유해 발굴과 봉환은 희생자의 존엄 회복이자 유족 피해 구제를 위한 한·일 양국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입법부의 방기도 비판 대상에 올랐다.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유해 발굴·신원확인·봉환에 관한 국가 책무를 규정한 '장생탄광 수몰사건 희생자유해의 발굴 및 봉환 등에 관한 특별법안'(김준혁 의원 대표발의)과 '장생탄광 강제동원 진상규명 및 희생자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강대식 의원 대표발의) 등 법안 2건이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를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위원회는 국회가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한·일 공동 자료조사와 유해 발굴 근거를 마련하고 안정적인 예산과 전담 조직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를 향해서는 전문 인력과 장비를 직접 투입해 미확인 유족을 추적하고, 유족과 시민사회, 법률·역사·감정 전문가가 참여하는 논의 기구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