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위원회가 글로벌 가상자산 플랫폼 등에서 거래되는 무기한 선물의 위험성에 대해 이용자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초고레버리지 구조로 인해 기초자산 가격이 조금만 변동해도 원금 전체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탓이다. 법적 보호 장치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일확천금을 좇다 회복하기 어려운 빚더미에 앉는 이들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의 변동성과 탐욕이 맞물려 발생한 부채는 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경제적 파탄으로 이끈다.
얼마 전 필자를 찾아온 한 의뢰인 역시 비슷한 수렁에 빠져 있었다.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과정에서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지급불능 상태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채무 앞에서 채무자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제도는 법원의 개인회생이다. 그러나 투자로 발생한 채무를 마주한 신청인들은 법원이 과연 자신의 무모했던 실패를 구제해 줄 것인가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안고 절차를 주저하곤 한다.
사라진 돈을 재산으로 보던 실무의 모순
오랫동안 법원 실무는 투자 채무자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는 명목하에 주식이나 가상화폐로 날려버린 손실금을 채무자가 임의로 처분한 재산으로 취급해 왔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614조 제1항 제4호 및 제2항 제1호는 변제 총액이 파산 시 채권자들에게 배당될 총액인 청산가치보다 적지 않아야 한다는 이른바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과거 실무는 이미 허공으로 사라진 손실금을 장부상 청산가치에 그대로 얹어 놓았다.
이러한 방식은 치명적인 모순을 낳았다. 손에 쥔 돈은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은데 장부상 재산 가치는 여전히 수억 원에 달해, 매달 벌어들이는 소득으로는 법이 요구하는 청산가치를 도저히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변제계획안이 강요되었고, 이는 수많은 청년 채무자들을 절차에서 중도 탈락시키거나 불법 사금융의 나락으로 내몰았다.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존재한다고 의제하는 실무는 회생 제도의 근본 취지인 갱생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변화는 현장의 한계를 자각한 법원에서 시작되었다. 서울회생법원은 주식 또는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의 처리에 관한 실무준칙 제408호를 제정해 2022년 7월 1일부터 시행했고, 부산회생법원 역시 동일한 취지의 실무준칙 제408호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해당 준칙 제2조 제1항은 채무자가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해 발생한 손실금을 청산가치를 산정할 때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날아가 버린 투자금은 채무자의 실질적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조치였다.
면책의 열쇠는 투명한 자금 흐름 소명
손실금을 청산가치에 넣지 않는다는 원칙이 무조건적인 빚 탕감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무준칙 제2조 제1항 단서는 채무자가 투자 실패를 가장하여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청산가치에 반영하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95조 역시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불성실하게 절차를 지연시키는 경우 법원이 신청을 기각할 수 있도록 정한다. 즉, 법원은 손실된 돈이 실제로 시장에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차명 계좌나 현금으로 숨겨둔 것인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실제 필자가 진행한 사건에서도 핵심 쟁점은 투자금의 사행성 판단과 자금의 구체적인 출처 및 사용처 소명이었다. 의뢰인의 금융 거래 내역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대출금이 입금된 통장부터 가상자산 거래소와 증권사 계좌로 이동한 경로, 그리고 최종 매매 체결 과정에서 체결된 손실 내역과 남은 잔고 증명서를 하나도 빠짐없이 엮어 법원에 제출했다. 그 돈이 은닉된 자산이 아니라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 속에서 완전히 소멸한 결과임을 객관적 자료로 증명해야 했다.
아울러 의뢰인의 최저생계비와 실질적인 가용소득 범위를 법리에 근거해 꼼꼼히 정리하여 무리 없는 변제안을 제시했다. 법원은 제출된 금융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뒤 재산 은닉 정황이 없고 성실한 갱생 의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손실액이 청산가치에 무리하게 산입되지 않으면서 의뢰인의 현실적인 가용소득 한도 내에서 감당 가능한 변제계획안이 최종 인가되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가장 먼저 살펴야 할 실무적 지점은 자금 흐름의 연속성이다. 대출을 받아 투자 계좌로 들어간 돈과 출금된 돈 사이에 단 며칠이라도 행방이 묘연한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개인 간 송금이나 현금 출금 내역이 섞여 있다면 법원은 이를 잠재적인 재산 은닉으로 의심하고 청산가치에 강제로 산입할 수 있다. 거래소나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모든 입출금 및 매매 체결 보고서를 사전에 확보해 자금의 종착지를 스스로 밝혀내야 한다.
또한 본인의 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제한 가용소득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손실금이 청산가치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변제 의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채무자가 앞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얻어 최장 수년간 성실하게 빚의 일부를 갚아나갈 능력이 있는지를 따져 본다. 자신의 소득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현실적인 생계비 기준을 세우는 것이 변제계획안 인가의 전제 조건이다.
법원이 투자 채무자에게 실무준칙을 적용해 재기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무책임한 투기 행위를 격려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미 일어난 경제적 실패에 얽매여 개인을 영원한 파멸에 남겨두기보다, 투명한 소명을 거쳐 정직하게 빚을 털고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법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제도의 온기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기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성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