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과 생활고로 2만1,000원 상당의 즉석밥을 훔친 피의자가 정식 형사재판에 넘겨지는 대신 법원에서 선고유예를 받았다. 정부 생필품 지원 대상자로도 연결됐다. 경찰이 생계형 경미범죄 피의자의 사정을 살펴 처분을 감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지 제도까지 연계해 재범 방지에 나선 것이다.
경찰청은 2026년 11월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6년 3분기 전국 경미범죄 심사위원회 우수사례' 9건을 선정해 발표했다. 피의자의 범행 동기와 경제적 형편 등 참작 사유를 적극 확인해 처분을 줄여주고 사회 복귀를 도운 사례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서울동작경찰서는 실직과 파산 신청으로 생계가 막막한 상태에서 2만1,000원어치 즉석밥을 훔친 피의자를 경미범죄 심사위원회에 회부했다. 경찰은 피해가 회복됐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정식 입건 대신 즉결심판을 청구했다. 피의자는 법원에서 최종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경찰은 보건복지부 '그냥드림' 사업과 연계해 생필품을 지원했다.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피의자를 복지기관과 연결한 사례도 포함됐다. 전남나주경찰서는 청소년수련관 창고에 무단으로 들어가 머물다 건조물침입 혐의로 신고된 피의자에게 심사위원회를 거쳐 훈방 처분을 내렸다. 피의자에게 발달장애가 있고 유일한 보호자인 부친이 암 4기 진단을 받아 돌봄이 어려웠던 사정과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참작한 결과다. 나주서는 이후 전남발달장애인지원센터와 연계해 피의자가 주간보호서비스를 받도록 조치했다.
피해자의 과도한 합의금 요구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고령 피의자도 구제받았다. 대구동부경찰서는 마트에서 빨랫비누 등 1만1,500원 상당의 생필품을 훔친 기초생활수급자 피의자에게 즉결심판을 청구했다. 피해자가 합의금 100만 원을 요구해 합의하지 못했으나, 피의자의 피해 회복 노력과 깊은 반성, 경제적 형편 등을 참작했다. 법원은 이 피의자에게 최종 벌금 10만 원을 선고했다.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는 사안이 가벼운 생계형 형사사건 피의자를 무차별 처벌해 전과자가 양산되는 일을 막으려고 각 경찰서에 설치한 기구다. 경찰청훈령인 경미범죄 심사위원회 운영 규칙 제2조와 제6조에 따라 경찰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외부 전문가를 절반 이상 위촉해 5명 이상 7명 이하로 구성한다.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가 예상되는 경미 형사사건은 즉결심판 청구로, 즉결심판 사건은 훈방으로 각각 감경할 수 있다.
최근 일선 경찰서의 심사위원회 활용은 크게 늘고 있다. 2026년 9월 기준 전국 경미범죄 심사위원회 회부 건수는 총 1만3,425건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 대비 약 63% 증가했다. 정식 형사입건 및 송치 단계 이전에 사건을 처리해 사법비용을 줄이고, 취약계층 피의자를 복지망으로 연결해 생계 곤란이라는 재범 원인을 해결하려는 취지다.
경찰청은 제도를 현장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일선 수사관 포상을 확대하고 유관 복지기관 연계를 계속 활성화할 방침이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차장)은 "앞으로도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처벌보다 선도와 지원이 필요한 경미범죄에 대해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따뜻한 법집행을 구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