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은행 계좌가 갑작스럽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지급정지 조치를 당하더라도 무조건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통장이나 체크카드 등 접근매체가 사기범에게 넘어간 구체적인 경위와 대가성 여부에 따라 최대 징역 5년의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억울한 피해자로 구제받을 수도 있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네이버 지식iN 상담을 맡은 송명호 변호사는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쓰였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고 계좌가 어떻게 넘어갔는지가 핵심이며, 억울하게 이용된 것이라면 공고일부터 2개월 안에 소명 자료와 함께 금융회사에 이의제기를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출이나 고수익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통장, 체크카드, 비밀번호 등을 넘겼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나 형법 제32조 및 제347조에 따른 사기방조 혐의로 수사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계좌번호만 알려줬는데 사기범이 피해자에게 그 계좌로 입금하게 한 경우라면 명의인도 이용당한 쪽이어서 고의가 없다는 점을 소명하면 된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접근매체를 양도·양수하거나 대가를 수수·요구·약속하면서 대여·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전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실제 재판에서는 대출을 미끼로 체크카드를 넘긴 행위에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두고 유무죄가 엇갈렸다. 대법원은 2019년 6월 27일 가공의 입출금 실적을 만들어 대출을 받기로 약속하고 체크카드를 퀵서비스로 보낸 사건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출받을 기회를 얻은 것'은 접근매체 대여와 대응하는 대가관계(경제적 이익)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2017도16946). 반대로 2021년 5월 7일에는 "대출 원리금을 회수하기 위해 체크카드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카드를 보낸 사건에서 "향후 대출을 받게 될 경우 원리금을 지급하기 위한 수단·방편으로 카드를 건넨 것일 뿐, 카드 전달 자체가 대출 기회라는 경제적 이익에 대응하는 대가관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2020도14030).
범죄 가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도 계좌가 묶이는 사례도 잇따른다. 사기범들이 온라인 쇼핑몰이나 배달 앱,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 공개된 계좌번호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소액 이체한 뒤 지급정지를 유도하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이른바 '통장협박' 수법이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4조와 제13조의2에 따라 사기이용계좌로 의심되면 즉시 계좌 전액이 지급정지되고 명의인은 비대면 전자금융거래가 제한된다.
억울하게 계좌가 정지됐다면 거래 은행에 정지 일시와 사유, 입금액과 입금자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후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7조에 따라 금융감독원의 채권소멸절차 개시 공고일을 기준으로 2개월이 지나기 전까지 금융회사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공고 후 2개월 동안 정당한 이의제기가 없으면 같은 법 제9조 제1항에 따라 명의인의 예금채권은 법률상 소멸하고 피해자 환급금으로 지급된다. 이의제기 시에는 문자나 메신저 대화 내역, 통화 기록, 거래 영수증 등 사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객관적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피해금 반환 의무가 없다고 판단되면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선의의 피해자를 위한 신속 구제 제도도 시행 중이다. 2024년 2월 1일 국회를 통과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에 따라 통장협박 피해자가 협박 문자 등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면 피해금과 무관한 계좌 잔액은 신속히 지급정지를 풀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2026년 5월 4일 발표한 표준화 절차에 따라 명의인이 충분한 소명자료와 함께 이의제기 신청서를 내면 원칙적으로 5영업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통보받는다. 요건을 충족하는 소액 건은 범죄의심액만 묶고 나머지 잔액은 사용할 수 있는 '일부지급정지' 조치를 전 금융권에서 적용받을 수 있다.
모르는 돈이 입금됐을 때 이를 임의로 출금하거나 다른 계좌로 이체하면 공범으로 의심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사기범은 지급정지 해제 권한이 없으므로 합의금을 절대 송금하지 말아야 하며,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계좌번호를 노출할 경우 통장협박 피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개인 계좌번호를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매장 홈페이지 등 외부에 노출하지 않아야 하며,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입금된 경우 절대 인출하거나 이체하지 말고 즉시 금융회사에 연락해 반환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