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가사·행정 재판을 맡은 법관 10명 중 8명이 소송 서면에서 인공지능(AI)이 지어낸 허위·부존재 판례를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홀로 소송 당사자뿐 아니라 변호사가 제출한 서면에서도 가짜 판례가 다수 확인되면서, 법원이 과태료 부과와 변호사 징계의뢰 등 제도적 제재 마련에 나섰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2026년 11월 2일 발표한 ‘AI 허위 판례 등 인용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민사·가사·행정 담당 응답 법관의 약 80%가 허위·부존재 판례 등이 인용된 사례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10월 6일부터 16일까지 각급 법원 법관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총 360명이 응답했다.
유형별(복수 응답)로는 존재하지 않는 부존재 판례 인용이 196명(80.7%)으로 가장 많았고, 실제 판시 내용을 왜곡한 허위 판례 인용이 159명(65.4%)으로 뒤를 이었다. 허위·부존재 법령 인용은 41명(16.9%), 허위·부존재 논문·문헌 등 자료 인용은 10명(4.1%)으로 집계됐다.
허위 판례 등을 인용한 주체(복수 응답)는 당사자 본인이 164명(69.5%)이었으나, 변호사인 소송대리인 또는 변호인을 지목한 응답도 136명(57.6%)에 달했다. 대법원 판결서 형식을 그대로 빌려 AI로 생성한 허위 판결서를 내거나, 처음 보는 법리와 함께 검색되지 않는 대법원 사건번호를 적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 판결 취지와 다르게 내용을 바꾸거나, AI와 나눈 대화 내용·소송 전략 문구를 서면에 그대로 넣은 채 제출한 사례도 보고됐다.
일선 재판에서는 이미 AI 가짜 판례가 판결문에 공식 지적되고 있다. 법률신문에 따르면 5월 28일 수원지방법원은 민사 판결문에 “피고가 들고 있는 판결들은 모두 AI 이용으로 인한 허위의 판결로 보인다”고 명시했다. 6월 11일 특허법원은 27년 차 대리인 변호사가 가짜 판례 8건을 낸 일을 두고 “원용 판례 상당수가 부존재하며 이를 검증 없이 법원에 제출하는 행위는 부적절하다”고 적시했다. 6월 12일 서울동부지방법원 역시 “원고가 의도적으로 허위 판례를 인용해 적극적으로 법원을 기망하려 했다”며 변론재개 신청을 기각했다.
이 같은 허위 인용은 소송 상대방에게 진위 확인과 반박을 위한 시간·비용 부담을 떠넘기고 재판 심리를 지연시킨다. 특히 변호사 없이 직접 소송을 수행하는 당사자는 상대방 서면의 오류를 찾아내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답 법관의 91.7%는 제도적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이 64.8%를 차지했다. 더팩트에 따르면 구체적 방안(복수 응답)으로는 과태료 부과 근거 마련 215명(61.4%), 인용 판례 검증의무 부과 214명(61.1%), AI 활용 사실 기재의무 부과 212명(60.6%), 반복적인 허위 인용을 한 변호사 징계의뢰 등 제재 도입 194명(55.4%) 순으로 집계됐다.
국회와 법원의 제도 정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에는 7월 3일 이성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소송관계인이 고의나 과실로 존재하지 않는 법령·판결 등을 인용하거나 주요 내용을 허위로 인용하면 법원 결정으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법원행정처는 앞서 2025년 11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현행 민사소송법 제107조에 따른 소송비용 부담, 대한변호사협회 징계의뢰 등 대응 방안을 검토했고, 2월 20일 사법정보공개포털에 허위 사건번호 확인 서비스를 도입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과태료 부과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자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국회에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아울러 전자소송 사이트에 ‘AI 활용 시 유의사항’을 안내하는 방안 등 실무 대책도 함께 검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