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에 속아 현금을 건넨 피해자가 수사기관 조사에 이어 법정 증인으로 다시 소환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현금을 받아 전달한 수거책이 범죄인 줄 몰랐다며 고의를 부인하면,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해 반대신문에 응해야만 수거책을 처벌할 증거능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대포통장 규제와 자동화기기(ATM) 지연인출제 등 계좌이체 차단 시스템이 강화되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를 직접 만나 현금을 가로채는 대면편취형 수법으로 범행 형태를 대거 바꿨다. 구인·구직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동산 외근 대행, 채권추심, 법률·세무 사무보조, 단순 현금 전달 고액 아르바이트 공고를 내 사회초년생이나 주부를 현금수거책으로 끌어들이는 식이다.
2023년 11월 17일 개정 시행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 제2호는 피해자를 만나 자금을 직접 교부받거나 출금하게 하는 대면편취형 행위도 전기통신금융사기로 명시했다. 같은 법 제15조의2에 따라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를 저지른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47조 사기죄가 적용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재판에 넘겨진 현금수거책들은 정상적인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다며 무죄나 형법 제32조의 종범(방조범) 감경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김민규 변호사는 “돈을 전달한 사람이 잘못인지 여부는 단순히 전달행위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단정되기 어렵고, 그 사람이 보이스피싱임을 알았는지, 알 수 있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사기 공범 판단의 핵심이 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범죄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용인한 미필적 고의가 있는지를 엄격하게 따진다. 대법원은 2024년 12월 12일 부동산중개법인으로 위장한 조직에 가담해 현금을 전달한 수거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4도10141). 당시 대법원은 조직원과의 연락 내용 및 수단, 대면 여부와 정상적 근로·업무위탁계약서 작성 여부, 업무 위임 경위의 통상성, 피해자 대면 시 언동과 위조 문서 교부 여부, 수거 횟수와 액수, 타인 명의를 이용한 ATM 무통장 분산 송금 여부, 보수의 적정성 및 지급 방식 등 7가지 요소를 종합해 미필적 고의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실제 채용 과정과 업무 형태에 따라 판결 결과도 엇갈린다. 채권추심 업체의 정상적인 외근 업무로 오인해 대금을 수거한 사건(2021도3320)이나 단순 사무보조 구인 광고를 보고 심부름을 수행한 사건(2024도9087)에서는 위법성을 의심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인정돼 무죄가 확정됐다. 반면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제1형사부는 2024년 10월 16일 금융감독원 및 검사를 사칭한 조직에 속은 피해자 4명에게서 총 1억1,800만 원을 받아 전달한 현금수거책 A 씨에게 징역 2년 3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신정일 부장판사는 “비록 피고인이 범행을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범행의 완성에 필수적인 현금수거책 역할을 수행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수거책이 법정에서 고의를 부인하면 피해자가 증인으로 불려 나간다. 이종현 법무법인(유한) 대륜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범죄로 재판장에 서는 가해자들은 보통 말단 조직원인데, 이 경우 범죄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방어한다”며 “피해자는 범죄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고 있으며 범죄 발생 이후 피해 회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이미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더라도 법원의 정식 증인소환장을 받았다면 출석해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161조의2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증인이 검사의 주신문 후 피고인 측 반대신문 기일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면 기존 법정진술과 진술조서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어진다(2016도17054). 정당한 사유 없이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 제151조 및 제152조에 따라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구인될 수도 있다.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할 때는 수거책이 직원을 사칭하거나 정상 업무처럼 행동해 속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흔들림 없이 밝혀야 한다. 김 변호사는 “상대측 변호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더라도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다투는 절차가 진행될 수 있으니, 당시 전달 경위와 상대방이 한 말, 믿게 된 이유를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