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석에 앉았고 차량이 앞으로 나아갔다. 수사기관의 시선은 대개 여기서 멈춘다. 도로교통법상 금지된 음주운전의 구성요건이 겉으로 보기에 완성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를 찾아온 한 의뢰인의 사건 기록 첫 장도 그렇게 쓰여 있었다. 차량이 이동한 거리는 약 50m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적발된 의뢰인은 억울함을 토로했으나 조서에 적힌 사실관계는 차가 움직였다는 냉정한 결과뿐이었다.
하지만 법정에서 다투어야 할 진실은 자동차의 궤적 너머에 있었다. 의뢰인은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 시동을 걸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의뢰인은 배우자와 술을 마시던 중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 점차 거세지는 상대방의 폭행을 피해 다급하게 운전석으로 몸을 숨겼다. 문을 걸어 잠그고 상대의 위협적인 접근을 막아내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기어가 의도치 않게 조작되었고, 그로 인해 차량이 약 50m가량 미끄러져 내려간 상태였다.
이동의 결과보다 앞서는 고의의 유무
실무에서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 차량이 단 1m라도 굴러갔다면 음주운전 혐의를 피할 수 없다는 비관적 인식이다. 그러나 도로교통법 제2조 제26호는 운전을 차마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대법원 2004도1109 판결이 분명히 밝혔듯, 도로교통법상 운전은 목적적 요소를 포함하므로 고의의 주행 행위만을 의미한다.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의도 없이 다른 목적을 위해 조작하다가 실수로 발진 장치를 건드려 차가 움직인 것은 법률상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의뢰인의 경우 스스로 차를 몰아 이동하려는 운전의 고의 자체가 없었다. 급박한 폭행의 위협 속에서 운전석은 도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신체를 차단하기 위한 가장 가까운 은신처였다. 차 안에 갇힌 상태에서 가해자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몸부림치던 중 변속기가 건드려져 차량이 움직였음을 규명하는 작업이 변론의 핵심 축이 되었다. 고의가 결여된 단순 과실에 의한 발진은 형법 제13조의 범의 규정에 따라 고의범인 음주운전죄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긴급한 피난과 방어의 경계선
만약 폭행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가속 페달을 밟아 주행한 경우라면 법리는 다른 경로를 밟는다. 의도적인 주행이 개입되었다면 구성요건 해당성은 인정되지만, 형법 제22조 제1항의 긴급피난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법원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처벌을 면제한다. 최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도 준강간 가해자의 추격을 피해 혈중알코올농도 0.094% 상태로 11km를 운전한 여성에게 긴급피난 법리를 적용하여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과거 청주지방법원 역시 남편의 각목 위협과 투석 폭행을 피해 차로 대피한 뒤 출동 경찰을 만나려 약 30m를 이동한 피고인에 대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005도9396 판결이 제시한 긴급피난의 기준, 즉 다른 보호 수단이 없었는지와 침해의 최소성을 엄격히 따지되, 당시 행위자가 느낀 공포와 당황스러운 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필자가 맡은 의뢰인의 사건은 주행 자체가 의도되지 않은 과실 발진이었으므로, 긴급피난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인 구성요건 고의 부존재에서 승부를 보아야 했다.
초기 진술의 혼란을 극복하는 증명의 과정
사건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의뢰인의 초기 경찰 진술이었다. 사건 직후 조사에서 의뢰인은 극심한 공포와 경황없는 혼란으로 인해 상황을 온전히 진술하지 못했다. 차를 조금 몰아 피하려 했다는 취지의 불리한 표현이 조서에 남아 있었다. 수사기관은 이를 근거로 피고인이 자발적 의사로 운전대를 잡았다고 밀어붙였다. 피의자가 수사 초기 작성된 조서의 내용을 뒤엎는 것은 재판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는 전형적인 난관이다.
이에 필자는 당시의 물리적 정황을 세밀하게 재구성했다. 배우자의 폭력 행사 양태, 차량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던 급박한 시공간적 조건, 차체 내부에서 발생한 방어 동작과 기어의 기계적 작동 과정을 논리적으로 연결했다. 극도의 패닉 상태에서 작성된 초기 진술의 왜곡 경위를 설득력 있게 소명하자, 재판부의 시각도 비로소 사건의 실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법원은 의뢰인이 차량을 본래 용법에 따라 고의로 운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최종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위기 상황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응 원칙
혹여 유사한 위난 상황에 직면한 이들이라면 차가 움직였다는 외형에 압도되어 권리를 지레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첫째로 운전석 탑승의 목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에 남겨야 한다. 피신과 방어가 목적이었다면 수사 첫 단계부터 주행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일관되게 진술해야 한다. 초기 조사에서 당황한 나머지 기억에 없는 추측성 답변을 남기면 사후에 이를 번복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진다.
둘째로 차량의 물리적 조작 과정을 객관적 정황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기어가 어떤 경위로 변속되었는지, 사이드브레이크 해제 여부와 페달 작동 여부 등을 차량 구조와 대조하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위협을 피해 불가피하게 주행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고 곧바로 정차한 뒤 112 신고를 시도하는 등의 긴급성 입증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음주운전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범죄이며 이에 대한 엄벌 경향은 온당하다. 그러나 처벌의 엄격함이 기계적인 사실 판단으로 변질되어서는 곤란하다. 법의 문언이 규정한 운전의 정의와 주관적 고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차가 굴러간 겉모습 뒤에 가려진 행위자의 떨림과 절박함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형벌권의 정당성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