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정산 대금을 쥐고 미루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직매입거래 납품대금은 최장 60일에서 35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특약매입 대금은 40일에서 20일로 각각 정산 기한이 앞당겨진다.

국회는 2026년 9월 17일 제439회 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재석 193인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정무위원회가 발의된 18건의 법안을 통합해 마련한 위원회 대안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법 제8조(상품판매대금의 지급 등)의 지급기한 단축이다. 특약매입·매장임대차(임대을)·위수탁거래에서 대규모유통업자가 판매대금을 관리할 때 종전 ‘월 판매마감일부터 40일 이내’에서 ‘20일 이내’로 지급기한이 줄어든다. 직매입거래 대금 지급기한 역시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에서 ‘35일 이내’로 25일 앞당겨진다. 직매입거래에서 월 1회 정산하는 경우에는 ‘월 매입마감일부터 20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정산 기준을 신설했다.

예외 규정도 마련됐다. 천재지변이나 채권 압류 등 유통업체에 책임 없는 사유가 있거나 파산·회생, 급격한 현금흐름 악화 등 긴급한 경영상 우려가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법정 기한을 넘겨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번 개정은 2024년 7월 발생한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와 유통업체의 회생절차 신청 등으로 불거진 ‘정산 대금 유용’ 구조를 막으려는 조치다. 유통업체가 최장 60일에 이르는 법정 기한을 이용해 입점·납품업체의 판매대금을 장기간 묶어두고 유동성 돌려막기나 다른 사업 자금으로 굴려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직매입 상위 9개 업체의 평균 지급기한은 53.2일에 달했다.

정무위 심사 과정에서는 기한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은 직매입 기한으로 30일을, 국민의힘은 40일을 각각 주장했으나 절충안인 35일로 최종 합의됐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은 30일, 국민의힘은 40일을 주장했고 이에 중간인 35일로 합의했다”며 “예외조항이 악용되지 않도록 공정위가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법안을 낸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도 “판매대금을 받기까지 최대 40일을 기다려야 하는 기존 제도는 중소 납품업체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며 “납품업체가 정당한 대가를 제때 받도록 공정한 거래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소상공인과 유통업계의 표정은 엇갈린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정산 주기 단축은 소상공인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판매 대금을 제때 돌려받도록 하는 공정한 거래 질서의 기본을 세우는 것”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지급기한 단축 강제는 유통업체들의 유동성 부담을 급증시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발주량 축소로 직결된다”고 맞섰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역시 운전자금 부담 탓에 신상품이나 스타트업 상품보다 대기업 인기상품 위주로 취급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개정 법률은 공포 후 1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되며, 시행 이후 수령하거나 판매하는 상품부터 적용된다. 대형마트·백화점·이커머스 등 소매업종 매출액 1,000억 원 이상이거나 매장면적 3,000㎡ 이상인 대규모유통업자는 1년의 유예기간 동안 표준계약서 수정과 정산 전산 시스템 개편에 착수해야 한다. 공정위는 유예기간 동안 긴급 경영상 우려에 따른 승인 기준과 절차 등 하위 시행령 규정을 구체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