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피고인에게 원래 없던 취업제한명령을 새로 부과하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보안처분인 취업제한은 형벌이 아니므로, 이를 새로 덧붙였더라도 형사소송법이 금지한 '형의 종류를 올리는 판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500만 원과 5년간 취업제한명령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2026도741). 2026년 10월 8일 선고된 판결이다.

사실관계

A 씨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벌금 700만 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담은 약식명령을 받았다. 당시 약식명령에는 취업제한명령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한 A 씨는 벌금을 낮추기 위해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A 씨에게 벌금 500만 원과 24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선고해 벌금과 이수 시간을 줄였다. 그러나 약식명령에는 없었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을 병과했다. 처분이 추가되자 A 씨는 형사소송법상 '형종 상향의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며 항소했다.

1심과 원심 판단

형사소송법 제457조의2 제1항은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과거에는 피고인에게 일절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없는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이 적용됐으나, 재판 남발을 막기 위해 2017년 12월 형의 종류만 올리지 못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원심 재판부는 1심이 약식명령의 벌금 700만 원보다 가벼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이상, 보안처분인 취업제한명령을 병과했더라도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한 위법이 없다고 보고 A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이 선고되었는지는 형법 제50조 제1항에 따라 형법 제41조 각 호에서 정한 형의 종류 순서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형법상 형벌은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로 나뉜다.

대법원은 "정식재판에서 약식명령과 동일한 종류의 형을 선고하면서 취업제한명령 등 보안처분을 새로 부가하였다고 하여 이를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벌금형이라는 형벌의 종류가 유지된 이상 보안처분 병과는 법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번 판결로 성범죄 사건 등에서 약식명령을 받은 피고인이 벌금 감액만을 노리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취업제한 등 보안처분을 추가로 받을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정식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직권으로 보안처분을 병과하더라도 형종 상향 금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