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절차상 하자를 덮으려 사후에 선포문 표지를 작성하고 이를 무단 파기한 전직 대통령비서실 참모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헌법이 정한 국법상 행위 요건을 갖추려고 결재 일자를 소급 기재한 행위는 형법상 허위공문서작성에 해당하며, 적법한 절차 없이 세단기로 폐기한 것은 대통령기록물 무단 파기에 해당한다는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6년 10월 27일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공용서류손상,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의구 전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의 상고심에서 피고인과 특별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2026도13791). 조은석 특별검사가 임명된 내란 특검 수사 사건 가운데 첫 대법원 확정판결이다.

사실관계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의 부서(副署) 및 실질적인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아 위헌·위법 논란이 일었다. 헌법 제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강 전 실장은 비상계엄 해제 후인 2024년 12월 6일 작성 일자를 비상계엄 당일인 '2024. 12. 3.'으로 소급 기재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만들었다. 이어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부서를 받고 이튿날 윤 전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문서를 완성했다. 그러나 12월 8일 한 전 총리가 "사후에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으니 내가 서명한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며 우려를 전하자, 강 전 실장은 같은 달 10일경 부속실 서랍에 보관하던 해당 문서를 세단기로 파쇄했다.

1심·원심 판단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는 2026년 5월 28일 강 전 실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1심 재판부는 비상계엄 당일 부서가 이뤄진 것처럼 표지 일자를 소급 기재한 행위와 이를 무단 파쇄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문서를 외부에 제출하지 않고 부속실에 보관만 한 점을 들어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혐의는 무죄로 봤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 형사12-3부 역시 2026년 8월 24일 피고인과 특검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특검은 1·2심 모두 징역 5년을 구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란특검법상 필요적 감면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피고인 측 주장도 배척됐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은 원심의 법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허위공문서작성 공소사실 가운데 계엄 선포 당시 부서가 완료된 것처럼 작성 일자를 소급 기재한 행위는 유죄로 인정했다. 반면 정상적인 국무회의 심의나 건의가 있었던 것처럼 기재됐다는 부분은 문서 자체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이유를 확정했다.

공용서류손상 및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도 원심대로 유죄가 확정됐다. 사후에 작성된 계엄 선포문 표지라 하더라도 적법한 절차 없이 무단 파쇄한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판단이다.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혐의는 문서를 부속실 서랍 등에 보관했을 뿐 외부에 유출하거나 제출하지 않아 공공의 신용을 해치지 않았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수긍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은 국가 중대 사안에서 헌법상 절차적 흠결을 감추려고 공문서 일자를 소급해 서명받는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임을 대법원이 확인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후 보완 목적으로 작성한 결재 문서라도 공용서류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므로, 정해진 절차 없이 파기하면 실형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기준도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