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달리는 배에 선장이 타지 않는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자율운항선박 국제안전규범을 공식 채택하면서, 육상 원격운항센터에서 배를 모는 ‘원격 선장’의 법적 권한과 사고 책임을 둘러싼 국내 법제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026년 10월 22일 서울 HJBC강남에서 ‘IMO 자율운항선박 국제안전규범(MASS Code) 채택: 국제해양법적 쟁점과 국내법적 함의’를 주제로 제7차 국제기구 의제·규범 대응 콜로키움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자율운항선박의 국제 기준이 처음 마련된 데 발맞춰 국내 해사법 체계의 개편 방향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실증 단계 갇힌 국내법…상용화 규정 공백

IMO는 2026년 5월 자율운항선박의 설계·운항·안전관리를 규율하는 국제안전규범(MASS Code)을 비강제 규범으로 채택했다. 전 세계 해운 규범의 표준을 세운 조치로, 향후 각국에 의무 적용되는 강제규범으로의 전환이 추진될 예정이다.

발제자로 나선 박영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은 국내 해사법제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은 2024년 1월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상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자율운항선박법)을 제정해 2025년 1월부터 시행 중이지만, 현행법은 규제특례를 통한 시범·실증 운항에만 머물러 있어 본격적인 상업 운항을 뒷받침할 인증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다.

박 연구위원은 "자율운항선박 안전규범을 둘러싼 국제해양법적 쟁점에 대응하고 국내 법제도를 정비하여, 국제규범 형성과 자율운항선박 상용화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증에서 상용 운항으로 넘어가기 위한 인증 체계 구축이 첫손에 꼽혔다.

‘배를 떠나선 안 된다’…선원법 재선의무 충돌

핵심 쟁점은 선장의 법적 지위다. 현행 「선원법」 제10조는 선장이 화물을 싣거나 승객이 탈 때부터 선박을 떠나지 못하도록 ‘재선의무’를 못 박고 있으며, 제6조는 선박 안에서 선원을 직접 지휘·감독하는 권한을 규정한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94조 역시 선박에 자격을 갖춘 선장과 선원이 승선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선원이 타지 않고 육상 원격운항센터(ROC)에서 조종하는 자율운항선박(3~4단계)이 도입되면 이 같은 기존 법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원격 선장에게 전통적 선장의 법적 권한과 형사책임을 그대로 물을 수 있는지, 육상 원격운항자의 법적 자격과 결격사유를 어떻게 규정할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도 복잡해진다. 기존에는 승선 선장의 과실 여부가 중심이었으나, 앞으로는 육상 통신 장애, 시스템 소프트웨어 결함에 따른 제조물 책임, 원격운항자의 과실 등으로 책임이 분산된다. 상법 해상편의 운송인 면책 규정과 선박보험 약관의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한 이유다.

2032년 강제 발효 목표…"법제 정합성 살펴야"

IMO는 비강제 규범의 경험축적단계(EBP)를 거쳐 2028년 강제 규범 개발에 착수하고, 2030년 채택을 거쳐 2032년 1월 1일 전면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 규범이 의무화되기 전에 국내 제도를 정합하게 정비하지 못하면 국내 조선·해운업계가 국제 운항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민지 한국법제연구원 글로벌법제전략팀장은 “자율운항선박의 상용화에 따라 선박의 안전관리와 운항 책임, 원격운항자의 법적 지위 등 기존 해사법 체계에서 검토해야 할 과제가 확대되고 있다”며 “이번 콜로키움이 국제안전규범의 논의 동향과 국내 법제의 정합성을 살펴보고, 향후 자율운항선박의 상용화에 대비한 법·제도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