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공해상에서 시가 4조 8,000억 원에 달하는 마약류를 원양어선으로 운반하고 서아프리카로 달아나 22년 동안 숨어 지낸 80대 피의자가 국내로 송환돼 체포됐다. 수사기관의 국제 공조와 형사처분을 피할 목적으로 국외에 머물면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법리가 결합해 처벌의 시계를 다시 움직였다.

경찰청과 부산해양경찰서는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를 받는 80대 남성 A 씨를 2026년 10월 20일 국내로 강제송환해 체포했다고 10월 26일 밝혔다. A 씨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원양어선 B호의 관리·감독 책임자로 승선해 남미 공해상에서 국제 마약밀매조직의 마약류를 총 5차례 운반하고 대가를 챙긴 혐의를 받는다.

A 씨가 운반한 마약류는 코카인으로 추정되며 총 5,385㎏(약 5.4톤) 규모다. 시가로는 약 4조 8,000억 원 상당으로, 국내 수사기관이 추적한 단일 해상 마약 운반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수준이다.

범행 당시 함께 배에 탔던 공범들이 잇따라 사법처리되자 A 씨는 2004년경 서아프리카 가나로 도주했다. A 씨는 현지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지내며 2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왔다. 부산해경의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과 경찰청 국제공조1과의 정보 공유, 주가나 대한민국대사관의 협조를 거쳐 2023년 7월 A 씨의 현지 소재가 확인됐다. 가나 경찰 당국은 A 씨를 불법체류 혐의로 검거해 강제추방 결정을 내렸다.

A 씨는 수십 년 동안 해외에 머물렀으나 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규정한다. 부산해경에 따르면 송치 과정에서 법조 변경으로 적용 공소시효가 5년으로 조정됐으나, A 씨가 해외로 도주해 체류한 22년 전체의 시효 진행이 멈춰 사법처리가 가능했다.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은 "이번 송환은 양 기관과 현지 대사관, 가나 관계 당국 간 긴밀한 공조가 이뤄낸 성과"라며 "앞으로도 해외로 도피한 중대 해상범죄 피의자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부산해양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A 씨는 구체적인 해상 운반 경로와 대가 수수 내역, 배후의 국제 마약밀매조직 연루 여부를 집중 조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