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겨냥해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통장과 보안매체를 가로채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취약계층이 대출 심사용 절차로 믿고 넘긴 계좌가 수억 원대 범죄수익 이동 통로로 악용되는 탓이다. 이로 인해 단순 피해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어 형사 처벌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저금리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문자에 속아 통장과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 정보를 넘긴 의뢰인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해당 계좌에서 약 5억 원대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유통됐기 때문이다. 피해 규모가 수억 원대에 이르는 사건에서는 적용 죄명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그치는지, 사기방조죄까지 확대되는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벌금형에서 실형으로 급격히 갈린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대가를 약속하며 접근매체를 대여하거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수사기관은 통장 대여를 넘어 자금 인출이나 송금 행위가 수반됐을 때 형법상 사기방조 혐의까지 함께 적용해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를 검토한다.

법무법인(유한) 안팍의 안주영 형사전문 대표변호사는 네이버 지식iN 상담에서 "피해금액이 약 5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만 인정되고 사기방조 고의가 부정된다면 벌금형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으나, 사기방조까지 유죄로 인정된다면 피해 액수를 고려할 때 실형 가능성이 높아 고의 부존재 입증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사기 범행을 돕는다는 확정적 의사가 없었더라도 범죄 가능성을 어렴풋이 인식하거나 용인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실형 선고를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법부 판단은 대여 당시 대가성 인식과 사기 가담의 미필적 고의 유무에 따라 엇갈린다. 대법원은 성명불상자로부터 대출 원리금 상환용 카드를 요구받고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넘긴 사건에서 피고인이 대출의 대가로 접근매체를 대여했다거나 대여 당시 그러한 인식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2020도16468). 거래 실적을 쌓아 대출을 실행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계좌로 입금된 1,600만 원을 인출해 전달한 사안에서도 사기 범행 인식과 방조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확정했다(2019도11799).

반면 법원은 접근매체를 넘길 당시 불법 용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한 채 수수료나 대가를 약속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 부산지방법원은 신용등급 상향 제안에 속아 계좌번호와 인터넷뱅킹 인증번호를 넘겨 5건의 보이스피싱에 이용되게 한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2023노2815).

형사처벌 외에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금융거래 제한도 뒤따른다. 계좌가 사기이용계좌로 지정되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비대면 거래가 정지되고 신규 계좌 개설이 막힌다. 법률사무소 명중 윤형진 변호사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만 인정되거나 사기방조 혐의가 형사상 인정되지 않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과실만으로도 성립될 수 있으므로 형사 처벌과 민사 손해배상 책임은 별개의 영역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짚었다.

어떠한 제도권 금융회사도 대출 심사나 실적을 이유로 통장 실물, 체크카드, 비밀번호, OTP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요구 자체가 금융사기라며 소비자경보를 유지하고 있다. 억울하게 연루된 피의자라면 경찰 조사 초기부터 사기 조직과 나눈 문자 내역과 통화 녹음 등 객관적 자료를 제출해 대가 약속과 범죄 인식이 없었음을 명백히 입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