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요구하는 작업대출 사기가 끊이지 않는다. 대출을 받기 위해 거래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말에 넘어가 계좌를 빌려주거나 입금된 돈을 찾아 전달했다가는 보이스피싱 공범이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26년 10월 6일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하고 신용점수 상향이나 거래실적 확보를 이유로 대출 실행 전 자금 이체나 입금을 유도하는 행위를 대표적인 대출빙자형 사기로 규정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출빙자형 사기는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자 10명 가운데 4명 수준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2021년 기준 계좌이체형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682억 원, 피해자는 1만 3,204명에 달했다.
문제는 피해자라고 여긴 대출 신청자가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출 희망자의 계좌를 사기 피해금을 세탁하는 1차 창구로 악용한다. 대출 신청자가 이 계좌로 들어온 돈을 다시 이체하거나 인출해 넘겨주면 형법 제347조 사기 종범(사기방조)으로 입건될 수 있다. 사기방조는 범행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더라도 불법 행위에 이용될 가능성을 미필적으로 인식했다면 성립한다.
체크카드나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 등 접근매체를 타인에게 넘기는 행위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대가를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거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전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같은 법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대법원은 대출 기회를 얻기 위해 체크카드를 넘긴 행위도 처벌 대상인 대여로 본다. 대법원은 거래실적을 조작해 신용한도를 높여주겠다는 요구에 체크카드를 건넨 사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무형의 기대이익 역시 법이 정한 대가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2017도16946). 반면 단순 원리금 상환용으로 속아 체크카드를 보낸 사안에서는 대여의 대가성 인식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하기도 했다(2020도16468).
입출금 심부름에 가담했더라도 편취의 고의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은 판결도 있다. 창원지방법원 형사4부는 2025년 5월 29일 대출 브로커에게 속아 입금된 돈을 찾아 전달했다가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거액을 가로채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거래실적을 쌓는다는 말에 속아 범죄 피해금을 인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불법적인 일이라는 의심이 들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공범의 고의를 추단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무죄를 입증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다. 해당 계좌가 사기이용계좌로 등록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모든 금융회사의 비대면 거래가 즉시 중단되고 신규 계좌 개설도 제한된다.
전문가들은 의심스러운 거래에 연루됐다면 추가 송금과 인출을 즉각 멈추고 입증 자료부터 챙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대방과 나눈 문자메시지와 메신저 대화, 통화 녹음, 대출 안내서, 계좌 입출금 거래내역 등 사기 조직에 속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원본 자료를 삭제하지 않고 보존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후 곧바로 경찰과 거래 은행에 경위를 설명하고 조사 전 진술 방향을 정리해야 불필요한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