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속진단키트 3,717만 개의 제조위탁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품목을 바꾸면서 계약 서면을 제때 주지 않은 셀트리온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 공동사업 형태로 진행한 거래라도 수급사업자에게 제조를 맡겼다면 원사업자로서 법정 서면 발급과 위탁취소 금지 의무를 그대로 진다는 취지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는 2026년 10월 29일 의약품·의료기기 제조·판매업체 셀트리온의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행위에 시정명령(재발방지명령)과 과징금 총 6억3,0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합인포맥스와 뉴스락에 따르면 과징금은 부당한 위탁취소 행위에 5억9,000만 원, 서면 발급의무 위반 행위에 4,000만 원이 각각 책정됐다.

셀트리온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1월까지 7차례에 걸쳐 수급사업자에게 코로나19 신속진단키트 제조를 위탁했다. 이 가운데 2차와 7차 발주 건에서는 진단키트 품목을 수차례 바꾸면서도 변경계약 서면을 교부하지 않았다. 3차 발주 건에서는 수급사업자가 작업에 착수해 납품한 뒤에야 법정 서면을 지연 발급했다.

뉴스락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2021년 10월 21일 2차 발주에서 전문가용(POC) 제품을 발주한 뒤 2022년 1월 22일 일부 물량을 개인용(OTC)으로 바꿨다. 같은 해 3월 4일에는 일부를 다시 전문가용으로 변경하면서도 법정 서면을 발급하지 않았다. 7차 발주 건에서도 2022년 1월 22일 개인용 제품을 위탁한 뒤 3월 4일과 5월에 품목을 잇달아 바꾸며 서면을 주지 않았다. 2021년 11월경 위탁한 3차 발주 건은 12월 1일부터 납품을 받고도 품명·수량·단가 등이 적힌 서면을 15일 뒤인 12월 16일에야 발급했다.

공정위는 이러한 행위가 하도급법 제3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제조 등을 위탁하거나 추가·변경위탁을 할 때 수급사업자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 법정 서면을 발급하도록 규정한다.

대규모 물량의 임의 위탁취소도 제재 대상이 됐다. 셀트리온은 2022년 12월 진단키트 공급계약을 해지하면서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없는데도 2차 및 7차 발주 건 중 미납품 물량 총 3,717만 개의 제조위탁을 임의로 취소했다. 공정위는 수급사업자에게 귀책사유가 없을 때 임의 위탁취소를 금지한 하도급법 제8조 제1항 위반을 적용했다.

이번 사안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진단키트 수요가 급증하자 셀트리온과 진단기기 개발업체 휴마시스가 공동사업 및 제조위탁 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팬데믹 국면 변화와 납기 일정 충돌로 셀트리온이 계약을 해지하면서 양측의 민사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졌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공정위 관계자는 “셀트리온은 수급사업자가 납기를 어겨 제조 위탁을 취소했다는 입장이지만, 1심에서도 셀트리온이 주장하는 납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공정위도 수용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반면 셀트리온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연합인포맥스와 SBS Biz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공식 입장문을 내어 “본건은 코로나19 신속진단키트 공동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거래 당사자 간 민사 분쟁 사안으로서 구조적으로 하도급법 적용 사안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당시 팬데믹 상황 속 계약 이행 과정과 세부 경위에 대해 법리적으로 추가 소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또 “휴마시스의 반복적인 납기 지연 등 약속 위반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대외 신뢰도 또한 크게 훼손됐다”며 “앞서 진행된 민사소송 1심에서 재판부는 휴마시스의 공급 지연 사실을 인정해 회사가 입은 피해에 대한 지체상금 지급 의무(약 38억8,776만 원)를 판결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양사 간 민사소송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제재는 바이오·의료기기 업계가 공동사업 형태로 제품을 개발·판매하더라도 제조를 위탁하는 구조라면 하도급법상 원사업자 의무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긴급한 시장 상황 탓에 납품 규격과 품목을 수시로 바꾸더라도 작업 착수 전에 변경 서면을 발급하지 않거나 법적 납기 기준 없이 일방적으로 발주를 취소하면 법 위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