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잔금을 치르지 않은 채 주유소를 넘겨받아 영업하던 임차인이 돌연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한 달 치 월세만 정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임대인은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만큼 이미 받은 계약금 1,000만 원을 몰취하고 월세를 받으면 된다고 여기기 쉽지만, 법적 근거와 서면 통보 없이 대처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위약금 특약 없으면 계약금 당연 몰취 불가
임차인이 잔금을 미지급한 채 스스로 계약을 파기하더라도 임대인이 계약금을 당연히 몰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매매나 임대차 계약에서 계약금이 오갔더라도 이를 위약금으로 하기로 하는 별도 특약이 없다면 계약금을 당연히 몰취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95다11429 판결). 계약 불이행으로 입은 실제 손해만을 입증해 배상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계약서에 채무불이행 시 계약금을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본다는 조항이 적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민법 제398조 제4항에 따른 손해배상액 예정 특약이 존재해야 실제 손해액을 증명하지 않고도 계약금을 귀속시킬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조항이 없다면 계약 해제 시 계약금을 일단 반환 대상에 두고 실제 공실 손해나 중개보수 등 입증된 손해액만 공제해야 하는 복잡한 정산 문제가 뒤따른다.
월세 정산 시 합의해제 오해 차단해야
임차인이 제안한 한 달 치 월세를 받을 때도 주의해야 한다. 임차인이 목적물을 인도받아 실제로 주유소를 점유하고 영업한 이상, 민법 제741조 부당이득 법리에 따라 해당 기간에 상응하는 사용료를 정산받는 것은 정당하다(대법원 98다8554 판결). 이미 영업에 착수한 상태이므로 민법 제565조에 따른 일방적 해약금 해제도 성립하지 않는다.
임대인이 아무런 단서 없이 임차인이 건네는 한 달 치 월세를 그대로 받으면 문제 될 수 있다. 법적으로 임차인의 조건부 계약 파기 제안을 묵시적으로 수락하는 합의해제로 해석될 위험이 있어서다. 합의해제로 인정되면 계약금 몰취나 추가 손해배상 청구권이 가로막힐 수 있다. 월세를 받기 전에 임차인의 잔금 미지급에 따른 채무불이행 해제임을 분명히 하고, 입금액은 불법 점유 기간의 사용료 명목이라는 사실을 내용증명 등 서면으로 확정해 두어야 한다.
석유판매업 서류 회수 없으면 재임대 불가능
주유소 임대차에서 가장 큰 복병은 행정 인허가 회수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10조에 따라 주유소 운영은 관할 지자체 등록이 필수다. 임차인이 자기 명의로 석유판매업 등록을 마쳤거나 관련 인허가 서류를 보관하고 있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임차인이 지자체에 폐업 신고를 하거나 지위 승계에 협조하지 않는 한 임대인은 다른 세입자를 들이거나 주유소를 직접 운영할 수 없다.
석유사업법 제8조에 따라 종전 사업자가 받은 가짜석유 판매나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의 효과가 후속 사업자에게 승계될 위험도 있다. 임차인 퇴거와 시설 인도뿐 아니라 석유판매업 등록증 원본과 행정 승계 서류도 함께 받아내야 한다. 상대방이 서류 반환을 거부하면 임대차 종료 증빙을 갖춰 관할 관청에 직권말소를 요청하거나 법적 조치를 밟아야 한다. 초기 단계부터 서면 절차를 빈틈없이 밟아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