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업자가 하청업체의 도면이나 문서를 직접 빼돌리지 않아도 하도급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납품받은 시제품을 역분석해 핵심 기술 수치를 알아낸 뒤 자사 특허로 등록한 행위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서류 형태의 유형물을 넘어 시제품 분석 결과나 노하우 같은 '무형의 정보'까지 하도급법상 기술자료로 인정한 첫 제재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는 2026년 11월 1일 자동차용 드라이브 샤프트 제조업체인 한세모빌리티를 적발해 시정명령(향후 재발방지명령)과 과징금 4억2,0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세모빌리티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정보를 유용해 자사 명의로 특허를 출원·등록했다. 드라이브 샤프트는 자동차 엔진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면서 높낮이와 방향을 조정하는 부품이다.
한세모빌리티는 기존 수급사업자인 소기업 B 회사에 자동차용 튜뷸러 샤프트 제조를 위탁했다. 이 과정에서 B 회사가 상당한 기간 노력과 비용을 들여 도출하고 비밀로 관리해 온 '요구 강도를 구현하는 최적 심부경도 수치'를 자신의 단독 특허로 출원·등록했다. 심부경도는 열처리를 가한 금속 재질 자동차 부품 내부 최중심부의 단단한 정도를 뜻한다. 고회전·토크 등 가혹한 환경에서 견뎌야 하는 부품 특성상 열처리로 경도 수치를 최적화해 강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한세모빌리티는 기존 거래처인 B 회사에 알리지 않고 납품업체를 C 회사로 바꾸기로 내부 결정한 뒤 C 회사로부터 샘플을 제출받았다. C 회사 샘플의 강도가 발주처 요구 기준에 계속 미달하자, 한세모빌리티는 품질 문제를 해결하려고 B 회사와 C 회사의 샘플을 비교·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한세모빌리티는 심부경도 수치가 두 회사 샘플 간 강도 차이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임을 파악했다. 이후 B 회사가 제출한 열처리 검사성적서 검토와 샘플 파괴검사 등 사후 검증을 거쳐 B 회사가 도출한 심부경도 범위가 최적 범위임을 확인했다. 한세모빌리티는 B 회사와 협의 없이 이 수치와 사실상 동일한 범위를 주요 내용으로 삼아 단독 명의로 특허를 출원·등록했다. 뉴스1과 기계신문 등에 따르면 B 회사는 2년 넘게 개발을 진행하며 열처리 부품 샘플 1,600여 개와 열처리 검사성적서 28부를 제출해 해당 수치를 관리해 왔다. 한세모빌리티는 이를 바탕으로 2020년 2월 1일 특허를 출원해 2021년 7월 2일 등록을 마쳤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2조 제15항은 '기술자료'를 상당한 노력으로 비밀로 유지된 제조·수리·시공 또는 용역수행 방법에 관한 자료,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로 정의한다. 구 하도급법 제12조의3 제3항(현행 제12조의3 제4항)은 원사업자가 취득한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해 유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뉴스1과 녹색경제신문에 따르면 한세모빌리티는 조사 과정에서 "자체 실험 및 분석을 통해 심부경도 수치를 독자적으로 도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세모빌리티가 부품 개발 과정에서 직접 심부경도 기준을 관리하거나 B 회사에 준수를 요구한 사실이 전혀 없었고, 특허 출원을 위한 내부 발명신고서에 B 회사 샘플의 시험 결과를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중견기업인 원사업자가 거래처를 바꾸는 과정에서 소기업인 수급사업자의 시제품을 무단 역분석해 기술 요지를 추출하고 단독 특허로 등록한 행위를 제재한 것이다. 그동안 도면이나 설계도 같은 유형 자료에 집중됐던 기술자료 보호 범위가 시제품 분석 결과나 공정 최적화 수치 같은 무형의 정보로 넓어졌다. 이에 따라 품질 검증 목적으로 받은 시제품을 임의로 분석해 대체 협력사에 넘기거나 특허로 내는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한세모빌리티는 앞서 3월에도 협력사에 관리계획서 등 기술자료 3건을 법정 서면 없이 요구해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3,600만 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은 문서나 도면 등 유형의 자료뿐만 아니라 시제품을 분석·실험하여 알아낼 수 있는 분석 결과나 노하우 등 무형의 '정보'에 대해서도 하도급법상 기술자료성을 인정하여 유용행위를 제재한 최초 사례"라며 "앞으로도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가 원사업자의 비용 절감이나 거래처 변경 등을 목적으로 부당하게 활용되지 않도록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술탈취행위를 면밀히 감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