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에서 8조 원 규모의 해킹 사고가 터졌다. 금융당국은 국내 가상자산사업자들에게 인터넷과 단절된 콜드월렛 보관 비중을 높이고 피해 보전용 준비금을 더 쌓으라고 주문했다. 현행 법정 하한선을 넘어서는 선제적 보안 강화 조치 요구로 거래소의 내부통제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긴급 출금 차단 요건을 둘러싼 법령 정비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11월 2일 유영준 디지털금융정책관 주재로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주요 가상자산사업자들과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한국시간 10월 30일 바이낸스의 핫월렛(인터넷 연결 지갑)에서 약 63억 달러(한화 약 8조 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무단 출고된 사고에 따른 조치다.
이번 바이낸스 해킹 피해는 종전 최대 규모였던 바이비트의 약 15억 달러 해킹 사고보다 4.2배 큰 역대 최대 수준이다. 임직원의 업무용 노트북이 침해돼 내부 시스템과 거래승인·서명 시스템에 비인가 접근이 이뤄진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바이낸스는 탈취 자산을 추적·동결하고 이용자 피해는 회사 자금으로 모두 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0월 31일 공식 자료를 내고 “바이낸스에서 60억 달러 이상의 가상자산을 탈취한 사건의 배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연계 해킹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라고 발표했다. 반면 북한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11월 2일 담화에서 “미국이 사이버사기 행위들을 우리의 소행인 듯 여론을 오도하는 것은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자 황당한 낭설”이라며 부인했다.
금융위는 이번 회의에서 국내 사업자의 전산 시스템 접근통제, 지갑 출고 승인·서명체계, 관리자 권한 관리 현황을 중점 점검했다.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해 콜드월렛 비중 상향, 입·출고 상시 모니터링 및 추가 대응인력 확보, 비정상 접근 시도 보고·공유 체계 운영, 준비금 추가 적립 등 네 가지 조치를 즉시 실행하라고 당부했다.
현행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7조와 감독규정 제9조 제1항은 이용자 가상자산 경제적 가치의 80%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규정한다. 같은 법 제8조와 감독규정 제10조에 따라 원화마켓 사업자는 핫월렛 보관 가치의 5% 이상(최소 30억 원 이상)을 보상한도로 보험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제22조에 따라 1억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덕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9월 말 기준 자료를 보면 국내 5대 거래소의 콜드월렛 보관 비중은 업비트 99.17%, 빗썸 94.76%, 코인원 85.00%, 디지털엑스(옛 코빗) 82.79%, 고팍스 80.54%다. 모두 법정 하한선인 80%는 넘겼으나 거래소 간 격차가 최대 18.63%포인트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거래소들은 추가 상향과 인력 충원 부담을 안게 됐다. IT조선에 따르면 거래소의 콜드월렛 비중 상향과 보안 검증 강화로 이용자의 대규모 출금 소요 시간이 기존보다 길어질 수 있다.
회의에서는 해킹 위기 시 거래소의 출금 통제 권한을 둘러싼 법적 쟁점도 제기됐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11조와 시행령은 전산장애나 해킹 등 대통령령이 정한 정당한 사유 없이 이용자의 입출금을 임의로 차단하는 것을 금지한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업계는 타 거래소에 대규모 해킹이 발생했을 때 국내 거래소가 자금 유출을 막으려 출금을 제한하면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상 징후 발생 시 출금 차단을 허용하는 유권해석이나 비조치의견서 발급을 공식 건의했다.
서울신문 등에 따르면 금융위와 금감원은 11월 5일 시중 은행장들과 관계 부처가 참석하는 전 금융권 긴급 보안 점검 대책회의를 추가로 열 예정이다. 당국은 관계기관 및 업계와 협력해 침해사고 예방과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대응체계를 지속해서 강화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