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대가 없이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빌려줬다가 사기 범죄에 악용되는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금전적 이득을 전혀 챙기지 않았더라도 해당 계좌가 사기 범행에 쓰였다면 수사기관의 조사와 함께 형사처벌 대상에 오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계좌가 범행에 쓰인 정황이 확인되면 명의인을 상대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형법상 사기방조 혐의를 함께 들여다본다. 단순한 호의로 명의를 빌려줬다는 진술만으로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무상 대여라도 처벌받는 기준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대가를 수수·요구·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행위뿐 아니라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전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금전적 대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지인의 계좌 요청 목적이 불법적이거나 범죄에 쓰일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예상했다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도운 것으로 판단되면 형법 제32조에 따른 사기방조 혐의가 추가로 적용된다.

민사상 손해배상과 금융거래 제한 위험

형사처벌 외에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금융거래 제한도 뒤따른다. 사기 피해자는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민법 제760조에 따른 공동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대법원은 2024년 9월 1일 선고한 판결(2024다238316)에서 계좌 명의인이 대가를 받지 않았고 불법행위 사용을 예견할 수 없었다면 방조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으나, 예견 가능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민사상 배상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범죄 연루 계좌로 등록되면 비대면 거래 제한 등 금융거래 전반에서 장기간 불이익도 받게 된다.

수사 대응과 입증 자료 확보 방안

억울한 처벌을 피하려면 계좌를 넘겨준 초기 경위부터 범죄 의도가 없었음을 객관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계좌를 요청받을 당시 지인과 나눈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내용, 통화 녹취, 거래 내역을 즉시 확보해야 한다.

계좌를 빌려준 뒤 비밀번호나 OTP 등 추가 접근 수단을 넘겼는지, 낯선 자금의 입출금이나 송금 요청에 직접 관여했는지 여부도 핵심 판단 기준이다. 범죄 사실을 인지한 즉시 금융회사에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수사기관에 자진 신고한 내역이 있다면 중요한 정상 참작 사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