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나 폭행 피해를 본 뒤 가해자의 범행 사실이나 재판 진행 상황을 주변에 알렸다가 오히려 형사고소를 당하는 피해자가 늘고 있다. 적시한 내용이 객관적 사실이고 재판이 실제 진행 중이더라도,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현행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할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이 적용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법정형이 무거워진다. 가해자의 직장이나 가족 등 특정 제3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전파 가능성이 인정되면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공공의 이익 입증 못 하면 위법

처벌을 피하기 위한 핵심 요건은 형법 제310조에 따른 위법성 조각이다. 적시한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만 처벌받지 않는다. 대법원은 2023년 2월 2일 선고한 판결(2022도13425)에서 적시 사실의 주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고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사익적 동기가 있더라도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공익 목적보다 사적 응징이나 비방 의도가 앞선다고 판단되면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사건 관련 판결서를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으로 유포한 사안에서 유죄를 인정했다(2019도13404). 2021년에는 자신이 겪은 성추행 사건 가해자의 판결문을 SNS에 공개 게시한 피해자에 대해 법원이 비방 의도가 크다고 보아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형사처벌 외에도 민법 제750조에 따라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적 유포 피하고 사법 절차 활용해야”

법조계에서는 피해 구제 과정에서 역고소 위험을 줄이려면 사적 고지를 중단하고 수사·사법 절차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권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온라인 명예훼손은 정통망법 제70조가 적용되며 비방할 목적 요건이 추가돼 법정형이 무겁다”며 “공익 목적이 인정되면 비방 목적이 부인돼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상윤 변호사(법률사무소 정중동)는 “추가 피해 방지와 사회적 경각심 제고 등 피해자 보호와 공익 목적에서 작성된 것임을 강조하고 관련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둘러싼 제도적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설문조사에서는 소속 변호사 1,944명 중 49.9%(970명)가 형법 제307조 제1항 폐지에 찬성했고, 16.5%(320명)는 형량을 벌금형으로 낮춰야 한다고 답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사생활 침해 자체를 직접 범죄화하고 있지 않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그 기능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며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고려한 정교한 입법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