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남긴 예금을 찾으려다 연락이 두절된 형제·자매 때문에 은행 창구에서 발길을 돌리는 상속인이 적지 않다. 개별 통장에 든 돈이 100만 원이나 300만 원 같은 소액이더라도 해당 은행에 예치된 고인의 총 금융자산이 300만 원을 넘기면 상속인 전원의 동의 없이는 돈을 빼낼 수 없어서다.

민법과 대법원 판례(2005스83)에 따르면 예금과 같은 금전채권은 상속이 개시되는 순간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에게 당연히 분할되어 귀속된다. 원칙적으로는 각 상속인이 자신의 상속지분에 해당하는 돈을 은행에 단독으로 청구해 받을 권리가 있다.

현실의 은행 창구는 법리와 다르게 움직인다. 금융기관은 공동상속인 사이에 사전 증여(특별수익)가 있었는지, 유언이나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따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임의로 일부 상속인에게 돈을 내줬다가 다른 상속인에게 이중 지급 책임을 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내부 규정으로 상속인 전원의 동의서와 인감증명서를 요구한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업계가 마련한 간소화 기준에 따르면, 동일 금융회사 기준 피상속인의 총 상속 금융재산이 300만 원 이하일 때만 상속인 1인의 단독 신청으로 인출할 수 있다. 예컨대 한 은행의 3개 통장에 각각 500만 원, 300만 원, 100만 원씩 총 900만 원이 분산돼 있다면 100만 원짜리 통장 하나조차 단독으로 찾기 어렵다. 금융기관은 계좌별 잔액이 아니라 ‘금융회사별 총액’을 기준으로 소액 인출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연락이 닿지 않는 상속인이 있어 전원 동의 서류를 갖추지 못한다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다른 상속인과 사전 증여나 기여분을 둘러싼 다툼이 없는 단순 연락 두절 상태라면 은행을 상대로 ‘법정상속분에 따른 예금반환 청구소송’이나 지급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하급심 법원(서울서부지법 2021나39851 등)은 은행 내부 지침보다 민법상 당연분할귀속 법리를 앞세워 은행에 해당 상속인의 법정지분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고 있다.

반면 생전 증여를 많이 받은 상속인이 있거나 특별한 기여를 주장하는 상속인이 있어 구체적 상속분 비율 자체가 쟁점이 되는 사건에서는 가정법원에 ‘상속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대법원(2014스122)은 공동상속인 간 형평을 맞춰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금채권도 예외적으로 상속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병원비나 치료비, 장례비 등 급한 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 통로가 있다. 사망진단서와 병원·장례식장 영수증 등 지출 증빙서류를 금융기관에 제출하면 금융기관이 해당 병원이나 장례식장으로 대금을 직접 결제하는 ‘상속예금 예외 인출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상속 재산과 채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인의 예금을 임의로 찾아 쓰면 단순승인으로 간주돼 피상속인의 빚까지 떠안을 수 있으므로 영수증 보관 등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