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법인에 거액을 빌려줬다가 회사가 문을 닫거나 자력이 없어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하는 채권자가 적지 않다. 원칙적으로 주식회사의 채무는 법인에 귀속된다. 하지만 돈을 빌릴 당시 변제 능력이 없음을 숨긴 정황이 확인되면 대표이사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 채권을 회수할 길이 열린다.

대법원은 주식회사가 주주나 대표이사와 분리된 독립 법인격을 가진다고 본다(2007다71578). 법인 명의 차용증이나 금전소비대차계약에 따른 채무를 대표 개인에게 대신 갚으라고 당연히 요구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채권자가 개인 연대보증을 확보하지 못한 채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 법인을 상대로 승소하더라도 실제 집행할 재산이 없어 회수가 막히는 일이 빈번하다.

차용 당시 무자력 숨겼다면 불법행위 성립

해법의 핵심은 차용 당시 대표이사의 기망행위를 입증하는 데 있다. 회사가 차용 시점에 이미 막대한 부채로 채무초과 상태에 빠져 변제 자력이 없는데도 이를 숨긴 채 자금을 빌렸다면 대표이사 개인에게 형법 제347조 제1항의 사기죄가 성립한다(2004도8651, 2019도115). 법원은 사업 운영 명목으로 돈을 빌려 기존 개인 채무 변제에 쓰고 변제 자력이 없었던 피고인에게 실형 3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민사상 책임도 함께 발생한다. 상법 제401조 제1항은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임무를 게을리한 때 제3자에게 연대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한다. 경영 상태상 채무를 이행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자금을 차용했다면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 책임과 상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 대표 개인 재산을 강제집행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대구고등법원 2000나8336).

가압류와 고소 병행…단순 채무불이행 구별해야

실무에서는 민사소송 제기에 앞서 민사집행법 제276조 제1항에 따라 대표 개인 명의 부동산, 예금, 차량 등을 신속히 가압류하는 전략을 쓴다. 재산 은닉을 차단한 상태에서 형사고소를 병행해 대표 개인의 자진 변제나 연대보증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법인은 범죄능력이 없으므로 차용을 직접 결정하고 기망을 실행한 대표이사가 행위자로서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단순한 경영 악화에 따른 채무불이행과 사기죄는 엄격히 구별된다. 차용 당시 변제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객관적 증거 없이 형사고소를 남용하면 수사기관의 불송치 처분이 내려지거나 무고죄로 맞고소당할 위험이 따른다. 법인 계좌 거래 내역, 차용 당시 재무제표, 자금 사용처 등을 사전에 확보해 기망 사실을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