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157억 원대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글로벌 투자은행(IB) HSBC에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공매도 금지 위반죄는 실제 매매가 체결돼야 범죄가 완성되며, 주문 제출 단계에서는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026년 10월 8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HSBC 홍콩법인과 소속 트레이더들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2025도17317). 2021년 4월 무차입 공매도 형사처벌 규정이 신설된 뒤 글로벌 IB가 기소돼 대법원 판결을 받은 국내 첫 사례다. 피고인 측 변호는 법무법인(유) 광장이 맡았다.

사실관계

HSBC 홍콩법인과 트레이더들은 2021년 8월 23일부터 12월 8일까지 사전에 주식을 보유하거나 차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9개 상장사 주식 31만 8,781주(약 157억 8,468만 원 상당)를 국내 증권사를 거쳐 매도 스와프 주문을 제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주식을 빌리지 않은 채 먼저 매도 주문을 내고 사후에 빌려 채워 넣는 방식을 썼다.

금융감독원 전수조사로 적발된 HSBC에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023년 12월 22일 고의성을 인정해 과징금 74억 6,760만 원 부과와 함께 검찰 고발을 의결했다. 서울남부지검 불법공매도수사팀은 2024년 3월 28일 HSBC 홍콩법인과 트레이더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1심·원심 판단

1심인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3부는 2025년 2월 11일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공매도 제한 위반죄는 매매 체결이 있어야 성립하며 주문 제출만으로는 성립하지 않고, 소속 직원들의 고의 및 공모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매도 주문 자체로 결제불이행 위험을 유발했다며 공소장을 변경했으나, 서울고등법원(2025노752) 역시 2025년 9월 26일 1심 판단을 유지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구 자본시장법(2024년 10월 22일 개정 전) 제180조 제1항 각 호에서 금지하는 매도란 상장증권에 대한 매도호가와 매수호가가 합치되어 “매매체결이 성립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투자자가 증권사를 거쳐 제출하는 매도호가는 청약 의사표시의 일환이며, 체결 전에는 주문을 임의로 취소할 수 있으므로 호가를 낸 단계만으로 결제불이행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특히 자본시장법에 공매도 제한 위반 미수범 처벌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 호가 제출만으로 기수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와 유추해석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판결 의의

이번 판결로 불법 무차입 공매도죄의 기수 시점이 호가 제출이 아닌 매매 체결 시점이라는 법리가 확립됐다. 금융당국이 거래 시스템 결함 등을 근거로 내리는 행정제재와 달리, 형사 유죄 판단에는 엄격한 증명과 법률상 구성요건 충족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HSBC의 형사책임은 무죄로 종결됐으나, 증선위가 앞서 부과했던 74억 6,760만 원 상당의 과징금 처분 유지와 불복 절차 정리는 후속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