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피신하더라도 이혼과 재산분할, 접근금지 등 법적 절차를 밟으려면 수백만 원대 변호사 선임비용 장벽에 부딪힌다. 경제적 여력이 없는 피해자라면 사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도 국가가 소송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무료법률구조 제도와 피해자보호명령을 활용할 수 있다. 비용 부담 없이 신변 보호와 본안 소송을 진행하는 길이 열려 있다.

가정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의뢰인들이 법률상담 창구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현실은 착수금과 성공보수 부담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가 제기하는 이혼 및 가사 소송 변호사 착수금은 통상 300만 원에서 700만 원 선으로 책정된다. 여기에 본안 판결로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 승소로 확보하는 금액의 5%에서 10% 안팎을 성공보수로 별도 약정한다.

가해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 신청만 단독으로 위임할 때도 100만 원에서 250만 원 선의 수임료가 든다. 형사사건과 본안 소송을 모두 포함하면 200만 원에서 500만 원(부가가치세 별도) 수준의 선임료와 100만 원에서 300만 원가량의 정액 성공보수가 요구되는 구조다. 1999년 변호사 보수 기준 규칙이 폐지되면서 수임료가 시장 자율에 맡겨진 탓이다.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5다200111)로 무효가 됐지만, 민·가사 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용 부담 없는 국가지원 무료법률구조

당장 생계와 안전이 급박한 피해자가 사설 로펌 수임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무료법률지원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법률구조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소송대리 등 법률구조를 무료로 지원할 책무가 있다.

성평등가족부의 2026 여성·아동권익증진사업 운영지침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의 민·가사 및 형사사건은 심급당 120만 원 이내에서 변호사 수임료와 인지대, 송달료 등 소송비용 전액이 국비로 지원돼 본인 부담금이 들지 않는다. 1인당 구조비용이 총 500만 원을 넘기면 심사위원회를 거쳐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무료법률구조사업 시행지침 제16조 역시 가정폭력 피해자 사건의 1인당 법률구조비용 총액이 600만 원을 초과하면 위원회 승인을 받아 비용을 초과 지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지원을 받으려면 상담사실확인서, 2주 이상 상해진단서, 고소장 접수증 가운데 한 가지 입증자료를 갖춰 여성긴급전화(1366)나 대한법률구조공단(132), 한국가정법률상담소(1644-7077)에 무료 법률구조를 신청하면 된다.

경찰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격리 청구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더라도 신변 보호 조치는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5조의2에 규정된 '피해자보호명령' 제도를 이용하면 경찰이나 검사를 거치지 않고 피해자가 직접 관할 가정법원에 가해자 격리와 접근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

판사는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주거 퇴거 등 격리,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송신 금지, 친권 및 면접교섭권 행사 제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본안 결정이 나오기 전이라도 법원은 동법 제55조의4에 따른 임시보호명령을 발령해 가해자의 접근을 즉각 차단한다.

절차를 밟을 때는 사건경위서와 함께 폭력 피해를 증명할 진단서, 현장 상해 사진, 문자메시지나 통화 녹취, 주민등록등본 및 가족관계증명서를 관할 법원 민원실에 내면 된다. 사설 변호사 선임비용이 없더라도 피해자보호명령으로 신변 안전을 먼저 확보한 뒤 국비 지원 소송구조로 이혼과 재산분할 본안을 이어가는 단계적 대응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