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지정학적 위기 속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 상용화가 다가오고 있다. 운항 거리를 30% 이상 단축할 수 있는 만큼 국내 법률과 국제규범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년 5월 국회를 통과한 북극항로 특별법의 연내 시행을 앞두고 기존 국내 법제와의 충돌을 막고 연안국 규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026년 10월 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공동으로 ‘북극항로가 여는 새로운 미래: 글로벌 협력과 국가전략’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에는 알리 셰이뚜 아랍에미리트 샤르자대학교 교수, 김현희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민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북극항로지원단장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해 경제적 함의와 법제 과제를 집중 논의했다.
기존 연구 중심에서 산업·물류 입법 체계로 전환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종전 항로와 비교해 항해 거리를 30% 이상 단축할 수 있어 중동 분쟁과 홍해 리스크를 우회할 대체 공급망으로 꼽힌다. 국회는 2026년 5월 7일 본회의에서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북극항로 특별법)을 가결했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5년마다 북극항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 소속으로 북극항로위원회를 두어 범정부 지원 체계를 갖추도록 한 것이 골자다.
그동안 극지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기초과학 탐사와 외교 분야에 분산 추진되던 극지 정책을 해운·조선·항만·물류 전반을 아우르는 상용화 지원 체계로 전환한 셈이다. 해양수산부는 2026년 8월 6일 시행령 제정령안을 입법예고하고 연내 본격적인 법률 시행과 위원회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연안국 법제 변화 반영해 단계적 구체화 필요”
학술대회에서는 법률 제정 이후 남겨진 법적 과제들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주제발표를 맡은 김현희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극항로 특별법은 북극항로 활용과 연관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향후 국제규범과 연안국 법제의 변화, 기존 국내 법제와의 관계, 실제 항로 이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책수요를 지속적으로 반영해 제도를 단계적으로 구체화하고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민지 한국법제연구원 글로벌법제전략팀장 역시 “북극항로의 현실화는 국제규범과 국내 법제, 환경·안전, 산업과 공급망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복합적인 법제 과제”라며 “기존 제도로 대응할 수 있는 영역과 새로운 제도적 기반이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규범 정합성과 기업 컴플라이언스 구축 과제
이국운 한국법제연구원장은 “북극항로의 개방은 새로운 물류경로 하나가 등장하는 사건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 산업, 사람과 자연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며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로만 귀결되지 않도록 이를 조정하고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도 “소관 연구기관들이 긴밀히 협력해 북극항로와 같은 국가적 복합과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와 해운·물류 업계에서는 특별법 시행 이후 러시아 등 주요 연안국의 입법 동향과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등 국제 극지 안전·환경 규범에 맞춘 실무적 준법 관리 체계 구축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법제연구원은 학술대회 논의를 토대로 연안국 법제 분석과 국내 법제 개선 방안에 관한 후속 연구를 이어갈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