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의료조력사(MAiD)' 제도를 국내에 도입할 수 있는지 사법부 연구기관이 법적 검토에 나섰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자기결정권은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적극적 방식의 조력 사망 제도화 논의가 사법 연구 영역으로 공식 확장된 것이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은 최근 연구보고서 '[재판제도] 의료조력사 법제화에 관한 연구(2026-14)'를 펴냈다.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인 김성돈 전 사법정책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이 연구 책임을 맡았다. 2024년 말 연구원 운영위원회에서 기본연구과제로 선정한 뒤 연구를 거쳐 이번에 발간했다.

보고서는 의사조력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를 포괄하는 의료조력사의 국내 도입 타당성을 헌법과 형사법 체계 속에서 짚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서 비롯된 환자의 생애 말기 자기결정권과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른 국가의 기본권 제한 및 생명보호의무 사이의 조화를 살폈다. 현행 형법 제252조의 촉탁·승낙살인죄 및 자살방조죄 규정을 분석하며, 의료조력 행위를 정당행위(형법 제20조) 등으로 포섭하거나 입법으로 비범죄화할 가능성도 함께 고찰했다.

남용 방지 시스템 설계도 보고서의 핵심 축이다. 제도화를 추진할 때 요구되는 실체적 대상 환자 요건, 환자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의사표시를 확인하는 검증 절차, 사법적 판단이나 독립 심사위원회를 거치는 절차적 통제 장치를 제시했다. 의사 개인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에 따라 조력을 거절할 수 있는 의료진 거부권 보장 방안도 포함했다.

국내 생애 말기 의료 결정 제도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의료진에 살인방조죄가 인정되면서 장기간 방어적 연명의료가 굳어졌다. 이후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김 할머니 사건)을 거쳐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법 시행 이후 2024년까지 연명의료 중단을 택한 환자는 누적 39만 7,000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현행법 제2조 제4호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해 사망에 임박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대상을 한정하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부착을 중단하는 소극적 유보만 허용한다.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약물 처방 등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치는 행위는 형법상 처벌 대상이다.

입법부와 헌법재판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에 이어, 2024년 7월 5일 제22대 국회에서 안규백 국회의원이 단독 제정법안인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안 의원은 "조력존엄사는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라고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24년부터 생애 말기 조력사망 금지와 처벌 조항을 둘러싼 헌법소원 사건을 접수해 심리하고 있다.

찬반 대립은 팽팽하다. 김하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5년 5월 헌재 학술발표회에서 "의료조력사의 핵심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관한 자율적 결정권에 있으며, 완화의료만으로는 부존엄한 연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짚었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형법 제252조의 위헌성을 제거하는 개정 필요성을 제시했다. 반면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료윤리연구회는 2024년 7월 성명에서 "의사를 조력자살 도구로 삼으려는 법안은 치료자라는 의사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윤리 위반"이라며 존엄한 돌봄을 위한 호스피스 시설 확충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신효성 명지대 객원교수 역시 해외 사례를 들며 중증 치매나 취약계층으로 적용 대상이 넓어지는 부작용을 경고했다.

해외에서는 입법 흐름이 엇갈린다. 캐나다는 2015년 연방대법원 위헌 판결 뒤 2016년 법안을 제정했고 2021년 적용 대상을 넓혔다. 스위스는 형법 제115조에 근거해 이타적 목적의 조력을 비범죄화해 운영 중이며,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1,729명이 조력자살로 생을 마쳤다. 프랑스 하원도 2025년 5월 조력 사망법안을 1차 가결했다. 이번 연구보고서는 향후 국회 법안 심사와 헌법재판소 평의 과정은 물론, 법원행정처의 입법 의견 검토 등 사법 실무 논의에서 기초 자료로 쓰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