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이 적발된 기업에 가격을 다시 정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두고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다는 논란이 일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개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특정 가격이나 인하율을 일방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법 위반 사업자가 스스로 가격을 재결정하도록 유도한 뒤 사후 검증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6년 10월 14일 설명자료를 내고 “가격재결정 명령은 공정위가 특정 가격이나 인하율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고 법 위반 사업자가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가격을 재결정하되, 공정위는 재결정 가격의 근거가 되는 기초 사실관계를 점검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담합으로 왜곡된 시장 가격을 교정하기 위한 조치일 뿐, 정부가 가격을 직접 정하는 이른바 ‘가격명령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취지다.

제도 성격과 사후 검증 방식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재결정 명령이 내려지더라도 최종 가격 결정권은 기업에 귀속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원가 변동과 시장 수요 등을 고려해 독립적인 판단으로 새 가격을 산정하면, 당국은 그 근거 자료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구조다.

검증 작업에는 신설된 경제분석국이 투입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분석국의 계량경제 분석 등을 거쳐 사업자가 재결정한 가격이 담합이 없는 상황에서의 경쟁 가격인지, 시정조치 이후 시장에서 정상적인 가격경쟁이 회복되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다.

법원 제동과 입법 추진의 맥락

이번 논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2026년 4월 인쇄용지 제조사 담합(과징금 3,383억 원)과 5월 밀가루 제조사 담합(과징금 6,710억4,500만 원)에 20년 만에 가격재결정 명령을 잇달아 부과하면서 촉발됐다. 과징금 제재를 받더라도 인상된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른바 ‘가격 고착화’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제지업체와 제분업체들은 행정소송과 효력정지를 신청했고, 서울고등법원이 2026년 9월 가격재결정 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본안소송 1심 선고 후 30일까지 처분의 효력이 멈추자, 공정거래위원회는 9월 10일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사법부 제동 직후 정치권은 입법 보완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28일 당정협의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시정조치 유형에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의 가격재결정 명령을 명문으로 규정하기로 합의했다. 현행법 제42조는 ‘그 밖에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라는 포괄적 조항에 머물러 있고, 구체적인 요건도 공정거래위원회 예규인 시정조치 운영지침에만 규정돼 법적 한계가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시장 정상화와 기업 부담 사이의 공방

법조계와 산업계에서는 가격재결정 명령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쟁점이 팽팽하다. 제재 대상 기업들은 행정청의 명령이 사적 자치와 헌법상 보장된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입장이지만, 원자재를 공급받는 영세 중소기업들은 담합으로 폭등한 가격이 조기에 정상화돼야 한다고 맞선다.

앞으로 대법원의 집행정지 재항고 심리와 서울고등법원의 본안소송 결과가 행정청의 시정명령 재량 범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자진신고자(리니언시) 감면 제한 규정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 과정에서도 정부 개입 수위를 둘러싼 입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