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이전료 120억 원 상당의 방위산업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국책연구기관 출신 연구원이 방위산업기술보호법 위반과 업무상배임 혐의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수사 개시 직후 연구수첩이 담긴 상자를 넘겨받아 보관한 동료 대학교수 역시 증거은닉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증거은닉 혐의로 기소된 사립대 교수 B 씨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앞서 2025년 2월 7일 대전지방법원 형사11단독(재판장 장민주)은 B 씨의 증거은닉 혐의와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 A 씨의 증거은닉교사 혐의에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수사 단계에서 A 씨를 대리해 구속영장 기각과 불기소 처분을 이끌어냈고, 공판 단계에서는 이해충돌 우려로 B 씨만 변호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사실관계

국방과학연구소 간부급 연구원이었던 A 씨는 2019년 9월 퇴직한 뒤 한 사립대 교수로 임용됐다. 수사기관은 2020년 4월 퇴직 연구원들의 기밀 유출 정황을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고, 같은 해 5월 1일 A 씨의 대학 연구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기관은 A 씨가 권한 없이 문서 보안(DRM)을 해제해 방위산업기술 파일을 취득하고(방위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약 9,000여 건의 연구자료를 무단 반출해 연구소에 손해를 입혔다(업무상배임)고 봤다. 반출 대상 기술 일부가 무인체계 자율제어 등 지정 방위산업기술에 해당하며 민간 이전료가 약 120억 원을 웃돈다고 평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퇴직 후에도 군사 2급 기밀이 적힌 연구수첩을 점유하고(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압수수색 직전 이 수첩이 든 상자를 동료 교수 B 씨에게 맡겨 숨기게 한 혐의(증거은닉교사)도 적용했다.

수사 및 공판 경과

영장심사 단계에서 변호인은 범죄일람표에 적힌 파일들이 법령상 지정·고시된 방위산업기술에 해당하는지 소명되지 않았고, 법률상 부정취득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다퉜다. 법원은 범죄사실 소명 부족을 이유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검찰은 방위산업기술보호법 위반과 업무상배임 혐의를 혐의없음 처분하고, 연구수첩과 관련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및 증거은닉 혐의만 재판에 넘겼다.

공판에서는 B 씨가 군사기밀이 적힌 연구수첩을 건네받아 보관할 당시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은닉한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뉴스1에 따르면 B 씨 측 변호인은 2024년 10월 15일 결심공판에서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B 씨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이 형사처벌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며 범죄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변론했다.

법원 판단

1심 재판부는 “증거은닉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지 않는다”며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범인 B 씨에게 증거은닉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공범종속성 법리에 따라 교사범도 성립할 수 없다고 보고 A 씨의 증거은닉교사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A 씨가 업무수첩에 군사기밀과 동일한 내용을 적어 점유한 사실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인정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제1심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한 경우 일부 의문이 제기되어도 그것만으로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리를 전제로 삼았다. 이어 “항소심 증인의 증언을 보태어 보더라도 고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판결 의의

이번 사건은 국가안보와 직결돼 구속 수사가 빈번한 방위산업기술 사건이다. 수사 초기부터 공식 지정·고시된 방위산업기술 해당 여부와 부정취득 성립 요건을 엄격히 따져 구속을 막고 불기소 처분을 이끌어낸 사례다. 지인의 부탁으로 물품을 대신 보관해 준 행위가 사후에 증거은닉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미필적 고의의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실무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