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 등 해외 거래에 나서는 기업이 국제 상거래 분쟁을 겪을 때 외국 법원 소송을 거치지 않고 조정 합의만으로 직접 집행력을 인정받는 길이 열린다. 법무부가 국제 조정 화해합의에 즉시 집행력을 부여하는 싱가포르조정협약의 국내 이행법률 제정과 온라인 분쟁해결(ODR, Online Dispute Resolution) 시스템 구축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법무부(장관 직무대행 차관 이진수)는 2026년 10월 28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 호텔에서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국제상업회의소(ICC), 대한상사중재원(KCAB)과 공동으로 제15회 아시아·태평양 에이디알(ADR, 대체적 분쟁해결제도) 학술회의를 열었다. ‘국제중재의 현대적 구조와 발전 방향’을 대주제로 열린 이번 회의에는 권영준 대법관과 도나 황 ICC 북아시아 지역 소장 등 국내외 전문가와 관계자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진수 직무대행은 축사에서 “국제중재가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공정성과 신뢰를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학술회의가 국제중재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률신문에 따르면 이 직무대행은 “조만간 조정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싱가포르 조정 조약(조정에 의한 국제적 화해합의에 관한 유엔협약)' 이행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입법 절차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2019년 서명한 싱가포르조정협약은 국제 상거래 분쟁에서 조정을 거쳐 도출된 화해합의에 법원 소송 없이도 체약국 내에서 직접 집행력을 부여하는 다자협약이다. 관련 이행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 해외 진출 기업은 길고 복잡한 외국 법원 소송 대신 조정을 활용해 분쟁 해결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법무부는 중재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와 제4조에 근거해 중재 전문인력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분쟁해결 시스템 구축도 함께 추진한다. 소송 외 방식으로 분쟁을 푸는 대체적 분쟁해결제도의 기반을 넓혀 국내외 기업의 분쟁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실무 세션에서는 국제중재 절차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할 때의 한계와 문서제출(Document Production) 절차 효율화, 중재인의 윤리적 책임 강화 방안이 다뤄졌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AI 도입에 따른 증거 분석 및 법적 한계 규정과 문서제출 명령 제도의 효율적 운용 기준이 향후 중재 실무에 적용될 전망이다.

사법부와 국제중재의 협력 방안도 주요 의제로 올랐다. 법률신문에 따르면 권영준 대법관은 장승화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 의장과의 특별 대담에서 “국제중재가 법원의 사건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권 대법관은 2028년 개원을 목표로 추진 중인 해사·국제상사 전문법원을 두고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실정에 맞춰 다수의 법관이 자발적 연구 그룹을 결성해 전문성을 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10월 26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서울 ADR 페스티벌 주간의 공식 행사로 진행됐다. 한국은 학술회의 이틀 전인 10월 26일 ‘2030년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A) 총회’ 서울 유치를 확정 지었다. 법무부는 싱가포르조정협약 이행법률 입법과 총회 개최 준비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