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관의 화면해설·자막 제공 의무를 ‘총 상영 횟수의 3%’로 묶어두었던 법원 판단이 10년 7개월 만에 뒤집혔다. 하청 노조 파업 때 원청이 대체인력을 투입해도 옛 노동조합법상 위법이 아니라는 첫 대법원 판례도 나왔다. 경찰의 스토킹 긴급응급조치는 판사 승인 전이라도 즉시 지켜야 한다는 판단도 함께 제시됐다.
법원도서관은 2026년 11월 3일 이 같은 내용의 대법원 판결 20건이 담긴 ‘2026. 11. 1. 판례공보 요약본’을 공개했다. 요약본에는 9월 2일과 9월 3일 이틀간 선고된 민사 7건, 가사 1건, 일반행정 3건, 조세 6건, 형사 3건의 핵심 요지가 실렸다.
영화관 장애인 관람 편의 제한 제동
대법원 제1부(재판장 신숙희 대법관, 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9월 3일 시·청각장애인 A 씨 등 4명이 CJ CGV,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등 영화상영관 운영 3사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2다203507). 2016년 2월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 7개월 만의 결론이다.
앞서 2심은 300석 이상 상영관에서 총 상영 횟수의 3% 범위 내에서만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영화관 사업자가 화면해설, 자막, 수신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및 제24조가 정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특히 원심이 정한 3% 기준은 피고들의 재정적 부담만 과도하게 고려해 재량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원고들을 대리한 공익인권법단체 두루는 입장문에서 “원심이 설정했던 ‘3%와 일부 상영관’이라는 제한적 기준은 시·청각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을 기업의 비용 문제 아래에 두었던 판단이었다. 오랜 다툼 끝에 나온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선고 당시 법정 수어 통역을 지원했다. 아울러 사법 사상 최초로 발달장애인과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서’를 일반 판결문과 함께 공식 제공했다.
하청 파업 원청 대체근로 및 퇴직자 연차수당 기준
노동 분야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 범위를 다툰 판결이 포함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9월 2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소속 대리점 택배기사 12명 중 10명에게 유죄 및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절차상 하자가 있는 2명 부분은 파기환송했다(2021도11473). 2018년 11월 대리점 교섭 결렬 후 파업에 들어간 기사들이 원청인 CJ대한통운의 직영 기사 투입을 막아서며 출차를 저지하고 화물을 검사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하청 택배기사들과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은 옛 노조법상 단체교섭의무를 지는 사용자가 아니므로, 노조법 제43조 제1항의 대체근로 금지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5월 21일 선고된 HD현대중공업 전원합의체 판결(2018다296229)의 법리를 대체근로 금지 규정에 확장 적용한 첫 판례다. 법무법인 세종 노동팀의 기영석·김종수 변호사는 뉴스레터에서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한 행위의 형사책임 판단에서 원청의 사용자성 유무가 핵심 기준임을 재확인했다”고 분석했다.
퇴직자와 폐광 근로자의 권리를 넓힌 판결도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9월 3일 근로복지공단 정년퇴직자 6명이 낸 소송에서 원고 5명의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했다(2024다206043). 취업규칙이나 노동관행 등으로 연차휴가 발생 시기를 ‘1년 근로를 마친 날(퇴직일 당일)’로 정했다면 퇴직 근로자도 연차휴가미사용수당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9월 2일 폐광 전 진폐증 진단을 받은 광원이 당장 요양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더라도, 폐광 후 상태가 악화돼 장해등급 판정을 받았다면 옛 석탄산업법 시행령상 재해위로금 지급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2023두53478).
스토킹 긴급조치 즉시 효력·PF 계약해제 세금 취소
형사 분야에서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 공백을 막는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제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9월 3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확정했다(2026도100088). 경찰관에게서 100m 이내 접근금지 등 긴급응급조치와 불복방법을 고지받은 대상자는 지방법원 판사의 사후승인이 나오기 전이라도 즉시 이행할 의무가 생긴다. 이를 어기면 스토킹처벌법 제20조 제3항 위반죄가 성립한다는 판단이다. 오상완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변호사는 기고문에서 “대법원 2026도100088 판결은 경찰의 긴급응급조치가 고지된 즉시 효력을 가지며 판사의 사후승인은 효력 유지를 위한 통제 절차에 불과함을 명백히 했다”고 설명했다.
조세 분야에서는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가 9월 2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삼성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2026두30077). 법인세법 제40조 제1항의 권리확정주의에 따라 이자수취 권리가 발생해 납세의무가 성립했더라도, 이후 매매계약 해제 등 후발적 사유로 연부이자 소득이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됐다면 법인세 과세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취지다. 세무법인 HKL 공동대표인 곽영국 세무사는 칼럼에서 “소득이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정되었음에도 장부상 권리만 따져 과세하던 관행에 명확한 한계를 그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