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 당시 좌익 누명을 쓰고 경찰에게 총살당한 고(故) 박찬길 검사와 부친의 유족에게 국가가 6억9,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사건 발생 78년 만에 불법 공권력 행사에 따른 국가의 배상 책임이 최종 인정된 것이다.

법무부(장관 직무대행 이진수 차관)는 2026년 11월 3일 박 검사의 유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국가배상 청구 소송 1심 판결에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같은 해 7월 6일 박 검사의 아들 등 유족이 낸 소송에서 10월 29일 고인과 유족의 위자료로 총 6억9,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국가 소송을 총괄·지휘하는 법무부장관의 상소권 포기 권한을 규정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정부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1910년생인 박 검사는 1947년 11월 7일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차석검사로 임관했다. 재직 당시 무고한 민간인을 확인 사살한 경찰관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구형하고 증거가 부족한 좌익 사범을 불기소·선처하는 등 경찰 수사를 엄격히 통제했다. 이 때문에 경찰로부터 '적구(붉은 개) 검사'라는 비난과 적대감을 샀다.

사건은 1948년 여순사건 발발 직후인 같은 해 10월 23일 벌어졌다. 순천 경찰은 박 검사를 체포해 인민재판장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씌운 뒤 정식 재판 절차 없이 순천북초등학교 교정에서 총살했다. 박 검사의 부친 역시 검사의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연행돼 고문을 받다 숨졌다.

사건 직후인 1949년 법무부 조사와 군·검·경 합동조사반, 국회 기록 등에서 박 검사가 인민재판에 관여한 사실이 없고 진압군 탈환 후 은신처에서 나온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나 배상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됐다. 이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위원회가 2026년 4월 박 검사 부자를 공식 희생자로 결정했다. 같은 해 10월 19일 행정안전부 주최 제78주기 합동추념식에서는 박 검사의 일대기가 소개됐다.

1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정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과 민법 제750조·제751조에 따라 국가의 위자료 지급 의무를 인정했다. 특히 통상적인 과거사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의 일률적 기준과 달리 산정했다. 사법통제권을 행사하던 현직 검사를 경찰이 사적 보복으로 살해한 점과 국가기관이 일찍이 무고함을 파악하고도 수십 년간 배상하지 않은 정황을 반영해 부자 합산 6억9,000만 원의 위자료를 정했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유족 측을 대리한 서동용 변호사는 "재판부는 박찬길 검사 부자 사건에 대해 경찰이 평소의 악감과 보복 의사에 따라 현직 검사를 살해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며 "박 검사 사건은 경찰의 가해 동기와 불법성의 정도, 피해자 지위, 사건 이후 국가의 태도 등을 고려했을 때 일반적인 집단 희생 사건과 다른 위자료 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직 검사가 경찰의 '빨갱이 사냥'에 몰려 억울하게 총살당하고 아버지마저 경찰서에서 구타로 숨진 사건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뜻깊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2025년 이후 여순사건위원회에서 공식 희생자로 결정된 피해자와 유족이 낸 소송 1심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항소를 자제하는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이진수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은 "여순사건 제78주기를 맞아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오랜 시간 고통받아 온 유족들의 아픔이 신속히 치유될 수 있도록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며 "법무부는 앞으로도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법무행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판결이 최종 확정됨에 따라 유족 측은 관할 법원과 배상금 지급 주무부처에 국가배상금 지급 신청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