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에서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요구하거나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고, 이별을 거부하며 만남을 강요하면 스토킹범죄로 처벌받는다. 교제폭력이 중대 강력범죄로 번지기 전에 초기 '지배·통제' 단계부터 접근금지와 전자장치 부착 등 공권력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법무부(장관 직무대행 차관 이진수)는 2026년 11월 3일 교제관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지배·통제 행위 9개 유형을 스토킹행위로 신설하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해당 일부개정법률안은 10월 26일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이 대표발의해 국회에 제출됐다(의안번호 제22073호).
종전 스토킹처벌법 제2조 제1호(가목~사목)는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주거지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통신망으로 글·영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등 7가지 유형만 스토킹행위로 한정했다. 형법 제324조(강요)도 폭행 또는 협박이 동반되어야 성립한다. 이 때문에 물리력 행사 없이 반복적으로 이별을 거부하거나 휴대전화를 검열하고 인간관계를 차단하는 행위는 처벌과 초기 피해자 보호조치에 공백이 있었다.
개정안은 스토킹처벌법 제2조 제1호에 아목부터 너목까지 9개 지배·통제 행위를 독립된 스토킹행위로 추가했다. 신설 유형에는 교제 등 관계의 형성·유지·재개를 강요해 의사결정을 제약하는 '관계강요', 동의 없이 위치정보 수집 장치·프로그램을 설치·운용하거나 거부 의사에도 계속 추적하는 '위치추적'이 들어갔다. "지켜보고 있다" 등 감시 사실을 알리는 '감시고지', 비밀번호 제공을 강요하거나 권한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등에 접근해 정보를 열람·취득하는 '디지털통제'도 포함됐다.
직장·학교 등에 허위사실이나 사생활 비밀을 퍼뜨리거나 예고하는 '사회관계침해', 교제 중 알게 된 사생활·개인정보 공개를 예고하는 '사적정보이용통제'도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 본인이나 가족 등 밀접한 관계인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가하거나 예고하는 '위협·공포조성', 상대방의 반려동물을 해치거나 예고하는 '반려동물위협', 위계·위력 등 부당한 방법으로 가족·친구·동료와의 교류를 막는 '관계고립·차단'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이 같은 9개 행위가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스토킹처벌법 제18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스토킹범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피해자가 합의하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이 수사와 기소를 진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폭행·상해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법원이 같은 법 제9조에 따라 피해자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유치장·구치소 유치 등 잠정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이번 입법은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된 통제 행위가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으려 추진됐다. 김남희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3년부터 2026년 9월까지 발생한 살인 범죄 2,760건 가운데 19.7%(543건)에서 동일 가해자의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성폭력 등 선행 범죄 이력이 확인됐다. 법무부는 3월 경기 남양주시에서 전자장치를 부착하고 접근금지 명령을 받던 가해자가 피해 여성을 살해한 사건 등을 계기로 성평등가족부·공소청·경찰청이 참여하는 범정부 전담팀(TF)을 운영해 왔다. 아울러 7월 13일 발표한 '스토킹·교제폭력 대응 강화 방안'의 핵심 과제로 법 개정을 준비해 왔다.
충청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진수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은 10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위치추적 장치 부착이나 직장 방문을 통한 업무 방해, 이별 요구를 거부하며 관계를 강요하는 행위 등이 폭행·협박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 처벌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피해자들이 불안감과 공포를 극심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고 중대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남희 의원도 같은 날 "남양주·송파·제주 사건은 모두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된 지배와 통제가 있었고, 피해자가 위험을 알렸고, 그런데도 법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너무 늦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살인 뒤 보복 살인으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끊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이번 정기국회 안에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국회 심의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법 시행 즉시 일선 현장에서 피해자 분리와 보호조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공소청·경찰청과 협력해 수사 및 잠정조치 적용 실무 기준도 정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