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고도 보험사로부터 진단비 지급을 거절당하는 금융소비자가 늘고 있다. 가입 약관에 적힌 질병코드(I60~I69) 진단서를 제출했음에도 보험사가 ‘주진단이 아닌 부진단’이라거나 ‘영상이 불분명하다’며 자체 의료자문 동의를 요구하는 식이다. 약관에 명시되지 않은 기준을 내세워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법원과 금융당국의 확립된 판단이다.
실제 분쟁 현장에서는 대뇌죽상경화증(I67.2)이나 상세불명의 뇌혈관질환(I67.9) 코드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다. 피보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보험금을 청구해도, 보험사는 노화에 따른 퇴행성 변화라거나 주진단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사 지정병원 자문을 요구하며 수개월간 지급을 미룬다. 국회 허영 의원실과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국내 보험사의 의료자문 건수는 총 35만5,123건에 달했다. 생명보험사의 의료자문 후 전액 부지급률은 2020년 19.9%에서 2025년 상반기 30.7%로 치솟았고, 손해보험사 역시 같은 기간 2.6%에서 10.5%로 급증했다.
법령과 판례는 약관 문언을 엄격히 적용한다.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피보험자가 파킨슨병을 주진단으로 받고 대뇌죽상경화증(I67.2)과 목동맥 협착(I65.2)을 부진단으로 받은 사건(제2015-12호)에서 보험사의 지급 책임을 인정했다. 분조위는 "약관은 질환의 정의와 진단확정 방법만을 규정할 뿐 주진단명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영상검사 및 임상 소견상 객관적 병변이 확인된다면 진단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법원 역시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을 때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라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며, 계약자에게 불리하게 주진단 한정 등 약관에 없는 요건을 유추·확대 해석할 수 없다고 판시해 왔다(2008다81633).
보험사가 부지급을 고수한다면 구체적인 근거를 서면으로 확보하는 일이 대응의 출발점이다. 천준영 변호사(법무법인 한강)는 "단순히 인정하기 어렵다는 구두 설명을 넘어서 약관상 어느 조항 때문인지, I67.2를 보장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인지, 영상자료 부족인지 명확히 서면 통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입 당시 약관과 상급종합병원 진단서, 자기공명영상(MRI)·뇌혈관조영(MRA) 판독지, 진료기록을 토대로 주치의에게 약관상 진단 요건 부합 여부와 영상검사상 병변 근거를 담은 보완 소견서를 갖춰야 한다.
자료가 갖춰지면 소송이나 지급명령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청구금액이 3,000만 원 이하인 소액사건은 지급명령 신청이나 소액사건재판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상법 제658조에 따라 보험금 지급채무가 지체된 데 따른 지연손해금도 청구 대상이다. 보험금 지급채무 불이행 시 상법 제54조에 따른 상사법정이율 연 6%가 적용되며, 소송 제기 후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연 12%의 법정이율을 적용받는다.
다만 부지급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보험사의 보험금 거절이 단순한 의학적·법률적 다툼을 넘어 위법한 불법행위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위자료는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상법 제662조에 따라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는 3년이므로, 보험사와 협의가 지연되더라도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분쟁조정 신청이나 소송 등 법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