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피해를 보고도 가해자의 선처 호소에 형사고소를 미루며 합의금을 나눠 받기로 약정했다가 떼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약속과 달리 합의금을 지급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곧바로 사기죄를 묻거나 소송 없이 강제집행에 나서기는 법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무지에서 500만 원 상당의 상습절도 피해를 본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6개월 분할 합의서를 썼으나, 가해자가 1회차만 지급한 뒤 석 달 동안 미루는 분쟁이 대표적이다. 피해자는 합의 파기에 따른 사기죄 추가 고소나 즉각적인 재산 압류가 가능한지 의문을 품기 쉽다.

법조계에서는 합의금을 제때 주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합의서 작성 당시부터 지급 의사나 변제 능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고소를 피하려고 피해자를 속였다는 점이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인규 법률사무소 정벽 변호사는 "단순히 합의 이행을 지연하거나 약속을 어긴 경우만으로는 사기죄를 적용하기 어렵고 합의 당시의 거짓 약속을 증명해야 한다"며 "사기 의도가 입증되어야 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문서 형태의 일반 합의서만으로는 가해자 재산에 즉각 강제집행을 할 수도 없다. 합의서는 채권·채무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일 뿐 판결문과 같은 집행권원이 아니어서다. 강제집행에 나서려면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민사소송을 내 승소 판결을 받아야 한다.

정주성 법무법인 초원 변호사는 "강제집행은 현재 작성한 합의서가 있다는 것만으로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대방이 동의한다면 남은 합의금과 지급기한을 정하고 불이행 시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집행인낙 공정증서를 작성해야 별도 소송 없이 집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사집행법 제56조 제4호는 공증인이 일정한 금액의 지급을 목적으로 작성하고 채무자가 강제집행을 승낙한 공정증서를 확정판결과 동일한 집행권원으로 인정한다. 상대방이 공증 재작성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민사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피해자는 애초 일어난 범죄를 두고 정식 형사고소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상습절도죄(형법 제332조)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나 합의 시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다. 수사기관에 정식 고소장을 냈다가 취소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소하지 않기로 한 민간 약정이 깨졌을 때 공소시효 안에서 즉시 경찰에 고소장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