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이 5년 넘게 기초 화학물질 가격과 입찰을 사전에 모의해 16조 원대 규모의 담합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직접 수사한 공정거래 담합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2026년 10월 1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LG화학, PKC, OCI, 애경케미칼, 롯데정밀화학, 유니드 등 6개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 37명을 재판에 넘겼다. 배모 전 PKC 영업본부장과 황모 전 LG화학 사업부장 2명은 구속기소됐으며, 김유신 OCI 대표이사 부회장과 장영수 전 PKC 대표이사 등 35명은 불구속기소됐다. 1순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적용받은 한화솔루션과 소속 임직원은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범행 수법과 담합 구조

검찰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21년 1월부터 2026년 4월까지 5년 4개월간 폴리염화비닐(PVC), 가소제, 가성소다, 염산, 하이포, 톨루엔디이소시아네이트(TDI), 에피클로로히드린(ECH), 염소 등 8개 기초 화학제품의 거래 가격과 공급량을 사전에 짰다. 담합 대상 품목의 거래 매출액은 총 16조 3,961억 원에 달한다.

범행은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부장·팀장급 실무자들은 정기 모임을 열어 품목별 가격 인상 시기와 인상 폭을 미리 정했다. 담합 의심을 피하기 위해 거래처에 발송하는 가격 인상 공문의 날짜와 순서까지 사전에 조율했다. 대형 거래처 입찰에서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에 낙찰 업체와 투찰 가격을 정해 두고 나머지 업체가 들러리로 참여하는 방식을 썼다. 담당자가 바뀌면 후임자를 경쟁사 모임에 직접 소개하거나 별도 연락책을 두어 담합 고리를 이어갔다.

원자재 위기 악용…산업 전반에 파장

이들은 미·이란 전쟁 등 중동 위기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뛰자 원가 상승 압박을 이유로 공동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약 1,400억 원의 지원금을 투입·논의하는 상황에서도 이를 손익 개선 기회로 활용했다.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 제1호와 제8호는 가격 결정 행위 및 입찰 담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담합 품목은 건설 파이프와 창틀, 반도체, 자동차, 가구 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기초 소재다. 이들의 가격 담합에 따른 원가 상승 부담은 완제품 제조업체와 일반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번 사건은 역대 검찰 담합 직접수사 규모인 전분당 담합(10조 1,520억 원), 밀가루 담합(5조 9,913억 원), 설탕 담합(3조 2,715억 원)을 모두 넘어선 수치다. 압수수색 착수 약 45일 만에 수사를 마친 검찰은 가담 정도가 무거운 임직원 37명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 요청했다. 기소된 6개 법인과 임직원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 재판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