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을 마련하려 대출 업자의 요구대로 신분증과 유심, 일회용 비밀번호(OTP) 발생기를 넘겼다가 보이스피싱이나 중고거래 사기 공범으로 몰려 수사를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본인은 대출을 받으려던 피해자라고 주장하더라도, 법령상 접근매체 양도와 타인 명의 통신 이용 제한 규정에 걸려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유형 가운데 대출빙자형 사기 비중은 40% 이상을 차지한다. 대출 심사나 거래 실적 생성을 빙자해 접근매체와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뒤, 이를 비대면 계좌 개설과 자금 세탁 통로로 악용하고 메신저를 탈퇴해 잠적하는 수법이 지속되고 있다.

대출 미끼로 접근매체 넘기면 5년 이하 징역 위험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대가를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전달·유통하거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타인에게 본인 명의 선불 유심을 넘기는 행위 역시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다.

사기 조직이 넘겨받은 계좌로 편취금을 입출금하면 형법상 사기방조 혐의까지 더해질 수 있다. 법원은 계좌나 보안매체를 넘긴 사람이 범죄 이용 가능성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는지를 따져 처벌 수위를 정한다. 대전지방법원은 2025년 9월 통장과 비밀번호, OTP, 선불폰을 타인에게 화물 등으로 전달해 범행에 쓰이게 한 피고인들에게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를 적용해 실형 징역 4개월 등을 선고한 바 있다.

모든 계좌 비대면 거래 정지…초기 입증 자료 확보 필수

범죄 피해자가 수사기관이나 금융회사에 피해구제를 신청하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해당 계좌는 물론 명의인의 전 금융기관 계좌에서 비대면 거래가 전면 정지된다. 금융감독원의 채권소멸절차를 거쳐 계좌 잔액 범위 안에서 피해환급금이 피해자들에게 배분되는 불이익도 뒤따른다.

대법원은 2023년 8월 31일 선고한 2021도17151 판결에서 접근매체가 형사처벌 대상 행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행위 당시 피고인이 지닌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출 심사 절차로 오인해 접근매체를 넘긴 사안에서 대가의 고의가 입증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된 대법원 2021도8182 판결 사례도 있다.

김호빈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팀장은 “금융회사는 대출 승인이나 진행을 이유로 어떠한 명목으로도 선입금이나 OTP, 보안매체 전달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요구는 사기”라고 경고했다.

이미 보안매체나 신분증을 넘긴 상황이라면 즉시 명의도용방지서비스(엠세이퍼)와 이동통신사를 거쳐 추가 개통을 차단하고, 금융감독원 개인정보노출자 사고예방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첫 경찰 조사 출석 전에 사기범과의 대화 내역 원본과 통화 기록, 화물 송장 번호 등 범죄 가담 의사가 없었음을 증명할 객관적 자료를 확보해 소명하는 조치가 필요하다.